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결 Aug 26. 2020

엄마 아빠 탓 아닌 거 알아

원망해서 미안해



'강해지자'는 말을 머릿속으로 몇 번 되뇌다 문득 꼭 그래야만 하나 싶은 생각이 스친다. 인간으로 태어나 삶이라는 축복 아래 다양한 일들을 겪고 있는 지금, 나는 몇 번의 지독한 아픔을 겼었지만 여전히 연약하다. 고난 아래 강인하게 우뚝 서는 인간은 없다. 그래서인지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 없었는데 정말로 그랬는데 오늘 이 밤 그들이 밉다. 


부모님의 인생이고 지금까지 삶의 선택 모두 그들의 자유 아래 이뤄진 것인데 나는 왜 이리도 고통스러울까. 가진 것을 감사하던 지난날들은 없고 가지지 못한 것들이 나를 억누른다. 삶 앞에 최선을 다했던 그들임을 알기에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다. 가정을 지키고자 충실했던 아빠의 젊은 날을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의 오랜 노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렸고 세월마저 아픔으로 물들였다. 사랑과 부, 모든 것을 잃은 그 날의 그들에겐 아마도 절망만이 남았으리라. 당시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어린이만이 느낄 수 있는 슬픔으로 남몰래 자주 흐느꼈다. 그저 그들의 묘한 분위기 속에 다시는 세 사람이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며.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많은 날들이 괜찮지 않았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현실이 아프다. 엄마는 왜, 라는 물음을 던지면 끝없는 어둠이 나를 덮어 그녀를 원망하게 하기에 오랫동안 나는 그저 침묵했다. 사랑하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기에. 하지만 오늘 문득 현재 내 삶의 근원적 고통을 생각하며 그녀를 떠올린다. 그리고 재혼한 아빠를 떠올린다. 두 사람 모두에게 손을 내밀어도 나는 아마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없으리라. 엄마는 가난하고 아빠는 어깨가 무겁다. 허나 신이 내게 주신 세상 가장 귀한 선물인 그들을 어찌 안지 않을 수 있을까. 현재의 고난이 나를 울게 해도 부모님의 존재가 내게 축복임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그들이 나를 잠시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걱정의 다른 형태일 것이고, 물질의 풍족한 지원을 주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나로 말미암아 세상 안에 놀라운 기회들을 찾으라는 신의 계획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괜찮다. 원망도 슬픔도 눈에 흐르는 뜨거운 액체와 함께 흘려보내고 마음의 빈자리에 웃음 지어주자. 행운의 여신이 그 자리에 깃들 수 있도록.

작가의 이전글 작은아씨들 에이미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