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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Jun 25. 2021

똥 같은 인연은 없다

  

https://bit.ly/3xWgsWx


  그 때 당시의 나는 똥이 필요했다. 느닷없이 글의 서두부터 똥 이야기를 하자니 조금 남사스럽지만 오래 전 겪었던 똥과 관련된 작은 단상을 펼쳐놓으려 한다. 당시 내가 쓰던 단편소설의 주제는 치질 수술 후 변실금을 앓게 된 어느 남자 이야기였다. 이렇게만 설명하자니 비웃음을 살 것 같지만, 내가 쓴 습작소설 중 문학 스터디 모임원은 물론 현직 소설가 두어 명에게 호평을 받았던 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나름 큰 호응을 얻었던 그 단편소설을 어느 곳에도 투고하지 않았다.


  나는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었고 실업자 상태였다. 일 년 정도 단편소설을 써보겠다고 결심한 건 재취업을 위해 수많은 이력서 작성과 면접을 거친 후였다. 같은 업종인 출판사 면접만 다섯 군데 정도 봤고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최종합격했다. 그 중 아주 작은 인원들이 일하는 곳이지만 성장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여겨진 출판사에 입사했던 적도 있다. 나는 딱 일주일 만에 사장님께 오래 일하지 못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본인 마음대로 나에게 일찌감치 큰 뜻을 품었던 사장은 엄청난 실망감을 보이며 나로 인해 자신이 받은 상처감에 대해서 나열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던 합정역 어느 카페에서 모 출판사 여사장은 나를 슬픈 눈으로 쳐다보며 대사를 날렸다. 


  "당신은 자신의 인생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네요.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조차 갈피를 못 잡고 있어요. 나는 당신이 본인의 삶에 어느 정도의 확고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방향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큰 기대를 했었죠.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시기 바라요. 앞으로는 본인의 불확실성으로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 알았다. 나도 겨우 버티고 있는 내 불안감과 인생에 대한 아득함이, 나보다 타인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만 상처 받았나요? 나도 당신에게 실망해서 떠나려는 겁니다, 라고 감히 말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어떠한 확신도 없었다. 이건 정말 똥 같은 감정이었다. 누군가 내 영역을 침범한 느낌인데 어느 대꾸조차 할 수 없는 처참한 심정이랄까. 


  그 이후에도 하루에 몇 군데씩 이력서를 넣었다. 출판업에 종사하기 전 광고회사에 다녔던 이력을 살려 다른 업종의 회사에도 수많은 원서를 넣었던 상태였고 최종합격한 곳도 더러 있었다. 대기업 계열의 에디터 팀에 임원진 면접을 볼 땐 눈물이 날 뻔한 걸 꾹 참았던 기억도 난다. 날카로운 스틸테 안경을 쓴 까칠한 인상의 중년여성이었는데 내가 진행했던 행사 중 본인이 좋아하는 해외 사진작가도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유별난 호의를 보였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별 것 아닌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가. 나는 면접에 합격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자 왜 눈물이 나려고 했던 걸까. 그건 정말로 합격할까봐 무서워서였다는 걸,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깨달았다. 나는 전철역 안에서 조금 흐느꼈다. 그날 저녁, 그 회사에 최종합격 문자를 받았지만 입사를 포기했다. 



  

  애초에 내가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실업자가 된 이유는 결혼 한 달 전 파혼했기 때문이었다. 서울과 거리가 먼 지방에 신혼집을 구해야 했기에 과감히 회사도 그만둔 상태로 결혼준비를 했던 것이다. 시작은 잔잔한 재즈 선율 같던 시랑도 파멸적인 감정 앞에선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서로가 모든 감정의 밑바닥을 맛보고서야 결혼준비는 물거품이 되었다. 정신없이 파열음을 내던 사랑이 끝나고 육체와 정신조차 사라진 진공 상태. 지금은 내 인생에 다신 없을 파혼남 J가 말했다. 


  “너에겐 잘 된 일이야.”

  “우리가 파혼하는 게 왜 내게 잘 된 일이지?”

  J가 마른 침을 삼켰다.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내 눈을 정확히 응시하고 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자는 내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야.”


  나는 생각보단 슬프지 않았다. 어쩌면 내 마음이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거부했던 걸지도 모르지. 어쨌든 어느 회사에 최종합격을 할까봐 울었던 전철역 안에서야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이 많이 아프고 방향성을 잃었으며 무엇 하나 내 마음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그 당시 나는 화장을 더 꼼꼼하게 하고 잔잔하게 웃으며 돌아다녔지만 저변의 마음은 오래된 행주처럼 너덜너덜 헤진 상태였다.


  그 당시 내가 왜 똥이 필요했는지, 정확히 말하자면 왜 똥과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필요했는지 말해보겠다.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당분간 소설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 시절을 회고해보자면 여러 소설 작법 강의를 들으며 소설을 썼다. 문학 합평 스터디 모임에도 열심히 나갔다. 하지만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때라 내 인생이 쓸모없는 똥 같다고 생각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은 남자에게 많은 걸 내어준 감정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었다. 타인에게 나를 쉽게 내어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런 마음을 대변하고자 똥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겪는 가상의 소설 속 주인공을 만들어냈던 것 같다. 


  그동안 한 번도 시도하지 블랙코미디 장르의 글을 기획했다. 똥과 관련된 글을 쓰고자 마음먹으니, 자꾸 똥, 똥 거리면서 과감하게 글을 쓰고 싶었다. 내 슬픔의 무게를 은연중에 기피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그렇게 희화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똥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절판된 오래된 잡지 하나를 구해야만 했다. 지금은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조차 안 되지만 컬러스 시리즈 <똥 서바이벌 가이드> 라는 제목의 잡지였다. 똥이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되는 자원임을 알려주는 독특한 내용이었다.


  나는 그 시절 똥 잡지를 활용하여 꽤 재미있는 단편소설을 완성시켰다. 여러 문학 합평모임을 다녔었는데 거기서도 똥 소설을 선보였다. 어느 문학 강의를 진행했던 소설가 O와는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도 친분을 쌓아가던 터였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문학가들의 작은 모임에 나를 초대하기도 했고 나는 그가 진행하는 따뜻한 분위기의 낭독회에 그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간 적도 있다. 몇 번쯤은 스케줄을 맞춰서 단둘이 빙수를 먹었고 커피도 마셨다. 아, 중고서점에서 내게 고전문학을 골라주기도 했고 밤거리를 조용히 걷기도 했었다. 그 당시 O는 소설가였지만 책을 내지 못한 소설가였다. 쉽게 말해 메이저 등단은 했는데 아직 책을 출간하지 못한 것. 하지만 긴 세월 꾸준하게 이리저리 활동해왔고 심지어 문학 작법 강의도 하고 있으며 문학잡지에 단편들을 가끔 기고하기도 했던 작가였다.


  그 때의 나는 작가 O를 조금 동경했던 것 같다.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감정보단 그의 외로움에서 나의 외로움을 보았고 그 찌질한 외로움이 싫지 않았다. 어느 날 문학 강의를 마치고 밤거리의 골목을 걸어 나와 신호등에 서 있는 내 뒤에서 그가 성큼 다가와 말했다. 


  "저번에 썼던 그 똥 관련 소설이요. 강의 시간엔 제가 전부 비평하듯 말했지만 개인적으로 참 좋았어요. 더 정성들여서 퇴고하면 당선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내가 그 글을 쓰기 위해 똥과 관련된 자료를 모으면서 생긴 에피소드에 대해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나의 입담에 호응하며 그 잡지를 빌려달라고 했고 우리는 그 똥 잡지를 핑계 삼아 사적으로 여러 번 만났던 것이다. 똥 잡지를 빌려줘서 고마워서 커피 한 잔, 똥 잡지를 빨리 읽지 못하고 오래 가지고 있던 미안함을 핑계 삼아 빙수 한 그릇, 똥 잡지를 다시 내게 돌려주기 위해서 밥을 먹었고, 똥 잡지를 읽고 쓴 나의 소설에 퇴고할 부분을 조언해준 보답으로 밥을 먹고 함께 서점을 갔다. 그 작가에게 약간 흠모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나는 언젠가 저돌적으로 물어봤다. 


  "제가 작가님의 낭독회에 가기를, 기꺼이 먼 거리를 감수하고 만나러 가기를, 응원해주길 원하나요?"


  나의 물음에 그는 그러길 원한다고 했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내가 찾아가면 좋으면서도 아닌 척 했다. 그에게 물어본 감정은 아니니 단언할 수 없지만 난 그렇게 느꼈었다. 당시에 몇 몇 친구들에게 그 작가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상세히 나열하면서 어떠냐고 물으면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다. 공통적이게 들은 조언은 그는 너에게 충분히 반하지 않았다, 라는 사실이었다. 웹 소설을 쓰는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외로운 거야. 인간 존재에서 오는 순수한 외로움이랄까. 단순히 남녀 사이의 계륵 같은 감정하곤 약간 다른지만 비슷해. 사람으로서 네가 참 좋고 이성적으로도 널 어느 정도 매력적이게 보고 있지만 그게 본인의 차지는 아니라는 거지. 그리고 너에게도 본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근데 웃긴 건 너의 관심은 참 따뜻하고 좋다는 것. 아 됐고, 똥 같은 감정이지."



  

https://bit.ly/3xOqPLW


  우린 서로의 마음속에 들어간 적이 없으니 무엇 하나 단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마지막 그 똥 잡지를 내게 돌려주던 작가 O의 눈동자였다. 나는 어느 날 O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는 신기하리만큼 매주 수업마다 내게 빌려간 똥 잡지를 가져오는 걸  잊어버리곤 했다.


  “다음 주면 종강 날이네요. 잊지 말고 잡지 갖다 주세요. 앞으로 만나기 힘들잖아요.”

  나의 직격문자에 O가 답장했다.

  “만나기 힘들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드디어 종강 수업 날. 모임 원들과 치킨 집에 옹기종기 앉아 시원하게 맥주 한 잔 걸치고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작가 O와 나, 우리가 헤어지던 4호선 지하철 환승역에서 O는 내 똥 잡지를 자신의 품에 꼭 앉고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은근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아니, 이 똥 잡지가 뭐라고 돌려주는데 이렇게까지 뜸 들이는 거지?’ 나는 눈을 끔벅거리며 그를 쳐다봤고 잡지를 내게 넘겨주라는 손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O는 애틋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는데 그 찰나에 정말 슬프고 외로운 표정이 반짝였다. 그건 정말이지 인간 존재 본연의 외로움 같아서 숭고해보이기까지 했다. 과한 표현일지 몰라도 정말 그랬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전철이 철로를 통해 다가왔다. 나는 O의 슬픈 눈동자를 향해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 시간 자신만의 확고한 독자를 갈망해왔지만 책 한 권 출간하지 못한 O는 어느 여자 독자이자, 강의에서 만난 제자가 보인 자신의 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절절한 감동의 표현이 더없이 좋았던 걸 수도 있다.


  내 인생의 불안감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거란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더 이상 내 인생이 아득하지 않기 때문이다. 되레 희망적이다. 모든 사람이 내가 겪은 어떠한 인생의 경험을 두고 겪지 않았으면 좋은 똥 같은 거라고 잊어버리라고 말한다한들 두렵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기꺼이 나의 편이 되어주면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다. 똥 같은 경험, 똥 같은 감정은 이 세상에 없다. 모두 피하고 싶어 하는 그 불편한 감정과 인연 안에 진짜 내 모습이 들어있지 않은가. 가끔은 똥 같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경험과 인연 속에서 의외의 명답을 얻는다. 조만간 어떤 곳이든 노트북 폴더 속에 오래 묵혀둔 변실금에 걸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다. 


  포털에 작가 O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그의 소설책과 프로필 사진이 보인다. 몇 해 전 북토크 기사와 독자들이 남겨놓은 리뷰들도 눈에 띈다. 오래 전 마지막으로 그와 통화가 닿았던 적이 있는데 자신의 책이 내년에는 출간될 것 같다고 했었다. 내가 2권을 사주기로 했던 기억이 나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온라인 서점에서 그의 이름을 다시 검색한다. 그가 따스한 독자들의 시선 아래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멀리서 응원해본다.


https://bit.ly/3gS9rj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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