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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Jun 27. 2021

망고를 보면 그녀가 생각나

  


  망고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망고의 매력을 도통 모르겠던 어느 날이었다. 치킨집에서 내가 사준 망고가 맛없다던 그녀 덕분에 언제부턴가 망고만 보면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뜻하지 않게 망고에 관한 강렬한 기억이 자리 잡은 셈이다.


  그날 우리는 여름 저녁이라고 치킨 한 마리를 시켜놓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기울였는데 그녀가 자꾸만 메뉴판을 만지작거렸다. "저 망고 진짜 좋아해요. 메뉴판에 망고 샐러드를 보니깐 먹고 싶어요. 사주세요." 조금 당돌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지만 나는 흔쾌히 사주겠다며 직원에게 추가 주문을 했다. 금세 망고 샐러드가 나왔다. 값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어도 치킨집에서 큰 기대를 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


  보랏빛 적채와 연둣빛 양배추를 채 썰어 접시에 수북이 올리고 그 위에 큐브 모양의 냉동 망고가 골고루 올라가 있었다. 내가 볼 땐 냉동 망고긴 해도 양이 많아 치킨집주인 인심이 좋다고 느꼈는데 그녀는 젓가락으로 애먼 망고만 뒤적거렸다. "냉동 망고일 줄은 몰랐는데...... 저는 냉동 망고는 싸구려 맛이라 안 먹어요."


  예의가 없는 모습에 실망한 나는 그 이후 그녀와 서서히 멀어졌다. 사준 사람 성의가 있는데 어쩜 저렇게 맹랑할까, 조금 의아한 마음이었다. 냉동 망고는 싸구려 맛이라 먹지 않는다던 그녀는 내가 서른 즈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 만난 사이였다.


  단순히 냉동 망고가 맛없다 말했다고 그녀를 멀리한 건 아니었다. 그날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다른 동료들이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의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너도 조심해. 쟤 악질인 구석이 있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작게는 몇만 원, 크게는 몇십만 원 빌리고 일부러 안 갚는대. 갚으라고 하면 딴청 피우고."


  나는 그녀가 조금 괘씸했다. 타지에서 가족 없이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이라 잘 대해주고 싶었지만 마음이 달라졌다. 망고 사건 이후 동료들의 돈을 의도적으로 안 갚는단 사실을 알기 전엔 한 번 더 그녀에게 밥을 산 기억이 있다. 그땐 일식 돈가스를 먹으러 갔는데 돈가스보다 비싼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며 투정을 부렸다.




   잠시 회사를 쉬는 동안 했던 일이라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자마자 그곳에서의 기억은 희미해졌다. 그녀도 내 기억에서 점차 흐려졌다. 시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언니, 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요. 고향으로 가도 반겨주는 사람 아무도 없겠지만요. 그래도 그곳에 가면 혼자라도 조금 덜 외로울까요. 좋은 언니가 생긴 것 같아 기뻤는데 언니도 저한테 실망했죠? 사람들은 부모 없는 사람은 피하고 싶나 봐요. 언니한테는 투정 부려도 될 줄 알았는데 실망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나는 그녀의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다. 정확히 표현하면 못한 거였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선뜻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 곤란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이후 망고를 보면 이따금씩 그녀가 생각난다. 가끔 노랗게 잘 익은 냉동 망고보다 생망고를 볼 땐 더 그렇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하지 못한 투정을 뒤늦게 누구에게라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무도 받아주지 않은 어리광을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


  때때로 그녀가 동료들의 돈을 갚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러면 안 된다고 따끔하게 혼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봤다. "부모 없이 자란 애들 함부로 충고하면 안 돼. 행여나 앙심 품으면 무섭다?"라는 동료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내심 미안하다. 그 말에 침묵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동의를 선택한 꼴이 되어서 지금도 그녀와 망고를 함께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불편하다. 나도 어쩌다 보니 인생의 풍파로 서른이 되기 전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으면서 스스로 치사하단 생각이 든다. 그저 인생을 조금 더 살아낸 사람으로서 그녀를 더 포용해줄 순 없었을까.


  며칠 전 옆자리 캄보디아인 동료가 코로나 때문에 이 년째 고향에 가지 못해서 부쩍 그립다고 말했다. "요즘 캄보디아가 그리워요. 고향에서 파는 시큼한 망고를 채 썰어 소금 살짝 찍어 먹으면 마음이 달래어질 것도 같은데··· ···." 나는 그날 퇴근길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그린 망고 한 상자를 결제했다.



  배달 온 그린 망고 한 상자를 열어서 매끈하고 최대한 상처가 없는 녀석으로 고르고 골라 쇼핑백에 담았다. '이 망고 몇 개로 고향 생각이 덜어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라고 담백한 멘트를 포스트잇에 남겨 캄보디아인 동료 책상 아래에 두었다. 점심시간에 쇼핑백을 발견한 동료가 조용히 다가와 내 등을 한 대 찰싹 때린다.


  "내 마음 어떻게 알고 이래요.  고향 생각난다."


  나는 씩 웃어 보이며 생망고와 냉동 망고가 싫다던 그녀 그리고 캄보디아 동료를 묶어서 생각해본다. 어디선가 그녀에게도 선뜻 생망고를 사주겠다는 누군가가 생기길 바라본다. 사실 망고가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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