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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Jun 29. 2021

아빠가 시멘트 통에 빠진 날

  어느 날 아빠가 시멘트 통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때 회사일과 사랑 혹은 인간관계 중 뭐 하나 매끄럽게 되는 일이 없던 때라 그랬는지 곱절은 더 충격적이었다. 엄마에게 아빠가 시멘트 통에 빠졌고 시멘트 독이 올라서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 나는 같이 있던 친구에게 앞 뒤 상황 설명도 없이 자리에서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빠가 시멘트. 시멘트 통에··· ···.” 나는 길거리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아이처럼 꺽꺽댔다. 티셔츠 위로 가슴 주변을 주먹으로 쾅쾅 쳤다. “아빠가 시멘트 통에 빠지셨대. 우리 아빠 어떡해!”


  위 문단을 쓰자마자 미동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아빠가 시멘트 통에 빠졌다는 문장을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그날 나는 길거리에서 계속 흐느끼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잡은 친구들과의 약속이었지만 도무지 기분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시멘트가 가득한 통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빠가 어느 정도의 시멘트 점도로. 어떤 자세로. 얼마만큼의 깊이로 시멘트 통에 빠졌던 건지 경우의 수를 수없이 헤아리며 집에 도착했고 나는 소파에 앉아 계속 가슴을 쓸어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현장에서 쓰는 도구들이 담긴 망치 가방을 어깨에 메고 안전화에 쌓인 하얀 시멘트 가루들을 수건으로 탁탁 털면서.


  나는 벌떡 일어나 아빠에게 다가갔는데 아니 다를까 멀리서부터 저항의 손짓으로 어허! 헛기침을 하며 가까이 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더니 작업복을 채 갈아입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 까만 인조가죽 금전 출납 장부를 꺼내 모나미 볼펜으로 현장일지를 적기 시작했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 복싱선수였다. 엄마가 첫째 딸인 나를 임신하자 더 이상 헝그리 정신으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낼 순 없다고 다짐하셨다고 한다. 가방 끈이 짧았던 스물네 살의 남자가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직업은 건설현장에서 연장 다루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었다. 훗날 아빠가 내게 말하기를 “남들 다 쉴 때 나는 화장실도 안 가고 현장에 있던 형님들에게 졸랐어. 제발 기술 가르쳐주세요.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합니다.”


  언제나 가족들에게 강한 모습만 보여주던 아빠. 언젠가 건설 현장에서 뭔가를 절단하다가 손가락을 다치셨는지 검지에 칭칭 감은 반창고 위로 피가 고여 있는 걸 엄마가 보시곤 한마디 했다. “여보. 이거 어쩌다 그런 거예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빠는 버럭 화를 내며 손가락을 바지 뒤로 숨겼다. 아빠는 늘 그랬다. 아주 작은 상처 하나도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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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시멘트 통에 빠진 날. 나는 샤워를 하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약국 봉투 안에 있던 연고를 꺼내던 아빠를 먼발치서 바라봤다. 무심하게 물을 마시러 거실에 나온 척 눈동자만 흘끔 댔다. 아빠의 팔에 빨간 반점이 잔뜩 올라왔고 살갗은 각질이 벗겨져 붉은 발진이 피어올랐다. 나는 이때다 싶어 냉큼 아빠에게 뛰어가 관심을 가지려 했는데 아빠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연고와 팔을 등 뒤로 숨겼다. 그래도 생각보단 심하지 않은 것 같아 안도했지만 아빠가 정말 크게 화를 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치던 아빠의 모습. 아빠는 그렇게 늘 강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지금 서른 중반이니깐 딱 스물 중반 전 입사했던 출판사에서 면접 당시 사전 인터뷰 작성을 요구했었다. 그중 딱 한 권의 책을 추천하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김애란 소설가의 『달려라, 아비』를 추천했었다. 혹시 노트북 폴더에 그때 작성했던 내용이 있는지 살펴봤는데 아직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어서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작은 선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재한 아버지를 위해 선글라스를 선물한다. 어디선가 평생을 쉬지 않고 달렸을 아비를 위해서다. 나는 오늘 밤 알큰하게 약주를 하고 주무시는 아버지를 위해 선글라스 대신 주름을 가려주기 위해 형광등 불빛을 끈다. 달려라 아비는 야광 분홍 반바지 차림으로 미친 듯이 달린다. 나의 아버지는 작업복을 입고 전국을 달린다.」


  지금은 부모님과 따로 사니깐 현장일을 마무리하고 약주 한 잔 하고 주무시는 아빠의 뒤에서 전등을 꺼드릴 수 없다. 이불을 멀리 던져놓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주무시는 아빠의 배 위로 이불을 덮어드릴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깐 조금 슬프다. 아빠가 형광등 불빛이 꺼진 컴컴한 방 안에서만큼은 부디 모든 마음 내려놓고 편해지길 바라본다. 


  '어둠 속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깐 강해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https://bit.ly/3qIFVj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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