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꾸준한 사람은 왠지 멋없고 별 볼일 없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확고한 나만의 신념을 세워 한 가지내공을 쌓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심하게 정진하는 모습에서 멋이 깃든다고 여겼다. 온몸으로 한결같은 부지런함을 내뿜으면 지니고 있던 멋도 반감되는 기분이랄까. 여하튼 태생적으로 가진 재능인 듯 혹은 뛰어난 감각으로 반절의 노력으로도 곱절을 얻어서 본의 아니게 통달해버린 태도. 그런 것들이 멋스럽다고 느꼈다. 꾸준함으로 키운 능력은 애초에 내 것이라기 보단 노력이 키워낸 자식 같아서 꾸준한 사람보단 재능있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었다.
사람이 꾸준하지 못한 것에도 여러 사유가 있겠지. 타고나길 욕심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욕심이 넘칠 때, 혹은 무언가를 빨리 이루고 싶은 급급함에, 또는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지 못해서, 그것도 이것도 아니라면 선택과 집중에 실패해서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거다. 때로는 꾸준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 내 마음과 환경의 불일치로 좌초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나는 꾸준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끝까지 매듭짓는 것에 약했다. 하고 싶은 것이 넘쳐서 모든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다가 시간과 에너지 분배에 실패한 경험. 한 방에 시시한 동네 뒷산이 아닌 에베레스트 정상에 다다르는 것을 상상하다가 제 풀에 꺾인 경험. 이루고자 하는 궁극의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열심히 목표만 세워서 실천하다가 목적의 방향을 잃은 경험. 이 뿐만이 아니다. 잔뜩 힘주고 만반의 준비를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이 쏙 빠져 나가떨어진 경험. 끝까지 밀고나가자 했으나 타의로, 상황으로 밀려난 경험. 나는 이렇게나 자주 꾸준하지 못했다. 항상 저 멀리 도달지점만 생각하면서 앞으로 달렸다. 한마디로 왜 꾸준해야 하는지 몰랐던 거다.
얼마 전 단골미용실에 들렀다. 머리를 자르려고 인터넷 예약을 했는데 원장님한테 곧바로 전화가 왔다. “그러지 말고, 예약시간을 바꾸는 게 어때요? 출근하는 날, 퇴근하고 마지막 손님으로 와요.” 존댓말을 하고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았지만 우린 꽤 막역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전화에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퇴근을 하고 미용실을 향하던 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파운드케이크를 샀다. 그 빵집의 대표메뉴인 쑥 파운드케이크와 마들렌을 예쁘게 포장해 달라 부탁했고 봉투를 받아 발걸음을 옮기는데 괜스레 마음이 들떴다. 벌써부터 케이크를 받아든 원장님의 청량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딸랑, 정겹게 울리는 현관종소리. 부엉이가 달린 종이 쟁쟁대자 원장님이 한걸음에 마중 나오듯 반긴다. 한두 달에 두어 번 만나는 사이지만 꾸준히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관계. 나는 깨지고 엎어지면서 이 일, 저 일 진로를 자주 바꾸며 살았지만 단골미용실의 원장님은 고등학교 졸업 후 이십 년 넘게 손에서 가위를 내려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모든 손님이 휩쓸고 간 늦은 저녁, 나를 마지막 손님으로 앉혀놓고 머리를 잘라주는 것을 좋아한다. “한두 달에 한 번, 자기랑 얘기하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 뭐랄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렇구나, 하고 받아주는 모습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해. 나랑 살아온 게 너무 다른데도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어느 날 가만히 내 머리를 가위로 자르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원장님은 정말 숭고해요. 꾸준한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지, 꾸준함이 재능이라는 걸 이제 누구보다 알거든요. 저는 직업을 계속 바꿨잖아요. 그래서인지 원장님 같은 분을 보면 뭐랄까, 연마된 행동 안에서 기품 같은 걸 느껴요.” 갑자기 그녀가 가위질을 멈추더니 의자 앞 전신 거울로 가만히 날 쳐다봤다. 그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그런 말 태어나서 처음 들어봐. 숭고하고 기품 있다는 말.”
생각보다 크게 감동을 받은 그녀 덕분에 숙연해진 분위기에 나는 어떻게 해야 이 말이 진심으로 다가갈까 잠시 고민했다. 말 그대로 진실의 마음 그대로이기에 담백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 “정말요. 진짜.” 그녀는 평생 네모난 미용실 안에서 손님을 받고 보내는 행위만으로 늙어가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처럼 많은 것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며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늘 멋있어 보였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 서로가 더, 더 멋지다고 양보하며 웃었다.
꾸준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꾸준하지 못했던 과거에 부연설명하며 그럴싸하게 변명한 적도 있다. 내가 꾸준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거창하게 나열했던 거다. 사실 그게 사실인 면도 있지만 더 훗날 알았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난 꾸준하지 못했고, 그건 명백한 실패였다고. 하지만 실패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저 수많은 경험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실패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어디선가 꾸준하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을 당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꾸준하지 못했던 건 그저 경험이며, 꾸준했음에도 당신의 차례가 오지 않음은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 않은 것에 불과하니 안심하라고 꼭 안아주고 싶다. 나는 꾸준한 것이 온몸에 꽉 힘을 주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님을 이제 안다. 꾸준하다는 것은 쉬지 않고 정진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숨고르기를 하면서 쉰다 해도 아예 놓치는 않는 것임을, 이처럼 꾸준하다는 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오롯이 알아주는 작업이다.
어쩌면 우리가 꾸준하지 못했던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 나의 꾸준함을, 이 절실함을 알아봐주지 않아서 놓아버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괜찮다. 당신의 그 절실했던 서툶과 꾸준하지 못했던 실패가 언젠가 당신이 꾸준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려줄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