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호 명에 '커뮤니티'가 들어가는 카페에 자주 발걸음을 옮겼다. 스스로에게 원래 다니던 카페들을 제쳐두고 새로운 단골 카페를 만드는 미션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번화가를 지나 아늑한 골목에 위치한 화이트 톤의 카페를 찾았다. 지역 예술가들의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아트 카페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커뮤니티 카페에 오는 손님들은 전반적으로 말이 없어서 좋았다. 모두들 대화를 하더라도 옆 테이블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속닥였다. 나는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 카페에 머무는 시간은 숨 고르기를 위한 행위다. 일상에 치여서 혹은 일상에 녹아들기 위해 나를 접어두고 살다가 다시 나를 찾기 위해 찾는 작은 쉼터. 언제부턴가 그런 회복의 시간에 필요 이상으로 사생활을 침범하는 카페 주인들의 안부가 부담스러웠다. 그들의 안부는 늘 따스하고 소중하지만 내가 카페를 찾는 진짜 이유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의 해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상호 명에 '커뮤니티'가 들어가는 화이트 톤의 골목 카페를 찾아냈던 거다.
그 카페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단번에 단골 카페가 될 거라 예상했다. 손님에게 함부로 애틋하지 않던 카페 주인의 덤덤함이 와닿았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좋았던 이유가 싫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동안 커뮤니티 카페에 자주 갔는데 어쩔 땐 눈인사도 생략하는 카페 주인에게 슬슬 서운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던 거다.
불친절이라고 단정 짓긴 힘들지만 친절함과도 거리가 멀었다. 상호 명에 커뮤니티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공동체를 형성하기엔 개인의 사생활이 과하게 지켜질 것만 같은 곳. 그럼에도 나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자주 그곳을 향했다. 여전히 커피를 주문할 때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카페 주인. 혹시 나를 무시하는 건가 의구심을 품을 적도 있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응대를 하는 것을 보고 생각을 거뒀다. 카페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면 그는 언제나 손님이 앉는 테이블 중 계산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노트북을 하거나 계산대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느 날 그 카페를 다시 방문했을 때 나는 계산대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이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가 뭐죠?” 내가 이렇게 묻자 카페 주인은 버퍼링이 걸린 기계처럼 잠시 정지됐다가 이내 나지막한 어조로 말했다. “··· ···.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정중하고 정갈한 목소리였다. 나는 지갑을 열다 말고 그의 얼굴을 봤고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가 곧바로 느리게 말했다. “그래도 손님들이 커피 맛이 좋다고 하십니다.”
나는 별안간 웃음이 나왔다. 이걸 정직하다고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단단한 고집이 묻어났다. 내가 확신하는 것과 모르는 것을 결코 과장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느껴지는 굳건함. 카페 주인의 말처럼 상호 명에 커뮤니티가 들어가는 그 카페의 커피 맛은 좋은 편이다. 지나친 산미도 정도에서 벗어난 묵직함도 없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진다. 그는 여전히 친절한 눈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그러나 손님이 무언가를 찾을 땐 성큼성큼 다가와 앞에 우뚝 서 있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상냥하게 묻진 않지만 손님의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는지를 재빠르게 따라가 자신도 그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시선을 둔다. 나는 그 고집스러움에서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딱, 도심에서 필요한 친절함이다.
매번 그 카페에선 커피만 마시다가 당근 케이크를 함께 주문했던 날이었다. 당근 케이크가 맛있냐는 나의 질문에 카페 주인은 잠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가 "냉동이지만 나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웃음이 비어져 나왔지만 참았다. 나는 가장 마음에 드는 테이블에 가방을 두고 창밖을 바라봤고 그는 어느새 아메리카노와 당근 케이크를 가져다주었다. 시나몬 시트와 크림치즈가 여섯 층으로 쌓인 케이크의 크기에 비해 포크가 유난히 작았다.
나는 까다로운 손님으로 비치고 싶진 않았지만 여섯 개의 시트를 한꺼번에 품을 수 없는 포크의 크기가 아쉬웠다. 조용히 계산대에 앉아있는 카페 주인에게 다가가 큰 포크가 없냐고 물었다. “포크는 그게 전부입니다.” 그는 내게 포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되묻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엔 포크가 바뀌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이상한 마음이 들어서 당근 케이크를 다시 주문해봤다.
반가웠다. 일 년 전 포크 그대로다. 나는 큰 포크는 없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작은 포크로 층층이 쌓인 케이크를 천천히 잘라먹었다. 이 날은 웬일인지 카페 주인이 복층에서 진행하는 미술 전시의 팸플릿을 내게 직접 건네주면서 "제가 이거 드린 적 없죠?" 담백하게 한마디 건네며 눈을 마주친다. 그까짓 큰 포크는 없어도 된다. 카페 주인의 일관성 있는 모습이 변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때로는 과한 친절보다 한결같은 모습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도심에서 필요한 친절함,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