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의 투명인간 체험기
살면서 투명 인간이 된 경험이 세 번 있다. 지금은 할 말이 넘쳐 글이든 말이든 풀어내야 직성이 풀리지만 예전엔 할 말을 해야 할 때도 입을 닫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유난히 말이 없었는데 어쩌면 변명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해명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입을 열었어야 했다. 억울해도 입을 꾹 다물고 상황이 지나가길 기다리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맹렬하게 물고 뜯어야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걸 열아홉에 처음 배웠다.
열아홉에 나는 친구들이 옆에서 웃긴 이야기를 하면,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웃을 뿐 별다른 말이 없던 학생이었다. 그러다가 입시철이 다가왔고 반에게 가장 친했던 친구와 사이가 틀어졌다. 친구는 자신의 남자친구와 내가 가지고 있던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연결고리에 심한 질투를 느꼈다. 어느 날, 친구의 남자친구와 나는 같은 온라인 합평 모임의 회원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게 질투의 씨앗이 되었던 거다.
그 친구는 지금 생각해봐도 십 대라는 게 놀라울 정도로 영악했다. 내가 본인의 남자친구에게 같이 글을 쓰자는 핑계로 유혹해서 본인의 남자친구를 빼앗았지만, 본인은 그럼에도 내가 친구이기 때문에 나를 질책하지 못하는 여린 성품의 소유자로 콘셉트를 잡았다. 그리고는 소문이 빠른 아이들을 중심으로 말을 퍼트렸다. 친구를 잃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며 내겐 어떤 말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단 사실을, 나는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야 듣게 되었다.
어느 날 교과서를 집에 놓고 와서 친구에게 책을 빌리려고 옆 반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처음엔 믿기지 않아 친구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치려 들었지만 친구가 마치 본인 앞에 아무 것도 없다는 듯 내 존재를 여러 번 외면했을 때 심장이 무섭게 뛰었다. 처음엔 너무 놀라서 그 친구가 나를 외면한다는 사실을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려고 다가갔지만 모든 친구들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걸 겪고부터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무기력함을 겪어야만 했다.
친구들에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나는 친구의 남자친구를 유혹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지 못했다. 열아홉의 나는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무게를 감당하기에도 벅찼고 그저 시간이 지나면 모든 진실을 수면 위로 드러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열아홉의 아이들은 ‘친구의 남자친구를 빼앗았다.’는 소문에 열광적이었다. 소문은 공기가 빵빵한 풍선처럼 계속 부풀어서 옆 반, 그 옆의 옆 반으로 뻗어나가 전교생에게 퍼졌다. 나는 밤마다 독서실 옥상에서 별을 올려다보며 하늘에게 물었다. ‘사실이 아니지? 하고 묻는 친구가 어떻게 한 명도 없을까요?’ 먼저 해명을 하려니깐 무언가 치사하고 슬퍼져서 입을 닫았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활에 한창일 무렵, 소문을 낸 영악한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술 한 잔을 하게 되었다. 나는 사과를 하면 받아주겠다는 마음으로 술을 왕창 마셨는데 의외로 그 친구는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는지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기분이었다. “너와 다니면 관심이 항상 네게만 쏠리는 게 죽도록 미웠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넌 절대 이해 못 해. 그래서 네가 상처받길 바랐어. 네가 내 마음을 몰라줬잖아.” 술기운인지, 놀란 마음 때문인지 얼떨결에 그 친구와 다음 약속을 기약하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구역감이 올라와서 전봇대를 붙잡고 토를 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친구를 보지 않았다. 이게 나의 첫 번째 투명인간 체험기다.
살면서 투명인간 체험을 다신 겪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인생은 늘 예측불허다. 대학교 4년 내내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가 있었다. 그 친구는 게임중독이라 집 밖을 나오지 않고 폐인처럼 지내는 일이 많았고 학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집을 가는 방향이 같다는 이유로 우리는 4년을 같이 통학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내게 비밀을 지켜달라며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어려서부터 게임중독이었어. 그리고 중학생 때부터 꾸준하게 남자들과 성관계를 했어. 부모님이 맞벌이라서 늘 외로웠거든. 이건 진짜 비밀인데, 널 믿으니깐 말하는 거야. 내 남동생은 지금도 집에서 가끔 칼부림을 해. 나한테도 자주 칼부림을 해서 얼마 전엔 경찰을 부르고 집에서 기어 나오다시피 빠져나온 적도 있고. 또 우리 엄마는 오래 전부터 바람을 펴. 엄마가 아빠한테 다정할 때마다 위선자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야. 엄마의 내연남이 맨날 우리 집 밑에서 엄마를 기다리거든? 나는 그 내연남의 자동차를 볼 때마다 부셔버리고 싶어.”
나는 그 날 그 친구에게 어떤 위로의 말이나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친구를 찾아가 자주 밥을 먹었고 게임 중독 때문에 학교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면 기꺼이 대신 써주기도 했다. 그 친구의 미래, 꿈에 대해서도 많은 용기를 줬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던 그 아이가 어느 날 다른 동기들과 부쩍 어울리더니 한꺼번에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는 설렘에 고무된 듯 보였다.
한 번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 남자친구 생겼어. 내 과거는 전부 알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으로 살 거야.” 그런데 어느 새 나는 동기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어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알게 된 건 그 친구가 동기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마치 내가 겪어온 것처럼 소문을 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덧붙여서 내가 동기들 전부를 수준 이하로 여기고 무시한다는 헛소문을 내서 대학 동기들 전부 그 말만 믿고 나를 피했던 거라고. 그래서 대학교 졸업식 날, 부모님을 모시고 간 강당에서 모든 동기들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는 걸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듣게 되었다. 나의 대학교 졸업식 사진은 독사진이 전부다.
그 때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져 물었다면 나는 결백을 주장했을까? 나중에 사실을 내게 전달한 동창생한테 “그 인생을 살아온 건 내가 아닌 걔야.”라고 말하진 못했다. 그저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만 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확인되지도 않은 말을 진실로 믿어버린다는 걸 그때 배웠다. 그보다 세월이 더 많이 흘렀을 쯤, 우연히 SNS에서 그 동창의 게시물을 봤다. 남편과 해외여행을 가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그 때 내가 그 친구의 과거를 폭로하는 댓글을 다는 상상을 잠시 해봤는데 그건 너무 반칙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내 인생에 또 투명인간 체험기가 있을까 싶었지만 나는 그 후로도 한 번의 경험을 덧붙여 세 번의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그 마지막은 내가 파혼을 한 직후였다. 그러지 않아도 파멸된 사랑에 아파하고 있었을 때였다. 나의 격정적인 파혼 사유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던 친한 지인이 모임에 엉뚱한 소문을 내면서 투명인간 체험을 했다.
나는 그 지인을 정말 아꼈다. 공무원 시험만 5년째인 그 지인에게 고기와 술을 자주 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지인은 사회생활에서 고군분투하는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게 너무 힘이 들어서 그랬다고 변명했지만 나는 안다. 그 지인이 모임에서 나를 투명인간 취급받게 만든 건 내가 아니라 본인 때문이라는 걸. 그녀가 공무원 준비생일 때 그녀의 어머니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나는 모임 사람들과 장례식장을 찾았다.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른 그녀는 어느 가을 날, 내게 공원을 산책하자고 했고 미세하게 떨며 내 손을 잡았다.
“우리 엄마가 새벽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잖아.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차마 정리를 못한 게 많더라. 엄마 화장대 서랍 안에 일기장이 있더라고. 나 그거 다 읽고 나서 알았어. 엄마가 십 년 넘게 바람을 폈다는 걸. 나는 엄마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받아들이기가 힘든데 엄마가 아빠를 그렇게 오랜 시간 감쪽같이 속였다는 걸 어디 가서 말할 수도 없고 용서가 안 돼. 이 사실을 같이 사는 친할머니가 알게 됐거든. 할머니가 네 어미 천벌 받아 죽은 거라고 하는데 미쳐버리겠더라.”
나는 말없이 언니의 손을 꽉 잡았지만 훗날 그 언니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마치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되었다는 듯 모든 면에서 고무되어 있었다. 우연치 않게 나는 그맘때 파혼을 했는데, 파혼 사유를 유일하게 알고 있던 언니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덧붙여서 그 모임에서 나를 파렴치한으로 만들었다. 이것 또한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마지막은 달랐다. 나는 모임 원들에게 왜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냐고 소리쳤다. 무슨 소문을 들은 거라면 내게 다 말하라고. 나는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다고. 다 해명해주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치사하게 피하지 말고 말하라고. 그렇게 외쳐대도 아무도 내게 사실을 바로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고 그녀의 말이 아무래도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다른 지인으로부터 그녀가 소문을 냈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뿐.
사람들은 왜 본인도 감당 못할 폭탄 같은 비밀을 마음대로 내게 던졌을까. 그래놓고는 왜 그 폭탄이 터져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나를 배신했을까. 더 어른이 되고나서는 누군가 내게 조금이라도 은밀한 이야기를 하려고 들면 경련이 난 듯 소름이 돋았다. 얼마 전, 내 인생에 다신 없을 마지막 투명인간 체험을 선물한 언니를 만났다. 6년 만이었다. 몇 년 전만해도 이렇게 다시 마주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응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나와 다르게 잔뜩 상기된 그녀가 커피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예전 일이지만 나 때문에 네가 많은 상처를 받은 것 같아서, 그래서 네가 더 오래 아파한 것 같아서 미안해. 하지만 나는 할 말이 정말 많아. 나는 정말 너를 아꼈어. 내 마음과 다르게 상황이 안 좋게 되어서··· ···.” 나는 루프탑 카페에서 시원한 공기 한 모금을 소리 내며 들이마신 후 대답했다.
“과거에 대해 할 말이 그렇게 많아? 과거는 이미 지났고, 그 때의 우리가 아니잖아.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분명 언니 때문에 아주 많이 마음 아팠어.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지금의 나는 그 어떤 감정도 없지만, 언니가 내게 상처를 준 사실이 없어지진 않지.”
언니는 무어라 더 할 말이 있어보였다. 심지어 조금 서운해보이기까지 했는데 “우리 예전에 정말 좋았는데, 네가 나 힘들 때 고기도 사주고 그게 지나고 보니 정말 고마운 거더라.” 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오늘 밤 늦게까지 나와 회포를 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빼고 대답했다.
“때로는 감당하며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도 있지. 이대로 내버려둬. 시간이 지나면 더 괜찮아질 거야.”
나는 나에게 투명인간 체험기를 선물한 그들에게 배운 게 있다. 아무에게나 함부로 진심을 내어주지 말 것. 그리고 함부로 나의 소중한 진심을 내어주었다면 그 대가를 치를 것. 어떠한 순간에도 내 자신을 지킬 것. 그리고 그들도 아마 내게 배운 게 있을 테다. 상처를 준만큼 자신도 아프다는 것. 어찌 보면 뼈아픈 투명인간 체험기지만, 진심을 함부로 내어주지 않는 사람이 되는데 기여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억울하진 않다. 그저 강가에 강물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듯 경험이 흐르게 두면 된다. 그러다보면 진실한 사람들의 진심을 온전히 믿어주는 내가 되어 있을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