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유 Jul 15. 2021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을 건네는 대신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들과 엘리베이터를 탔다. 부쩍 더워진 날씨에 시원한 냉면 한 그릇씩 먹으면 힘이 날 것 같아서 맛집으로 소문난 곳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남자 꼬마둥이가 엄마 손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 탔다. 펭귄처럼 뒤뚱거리는 걸음걸이가 귀여웠는지 동료들은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며 한 마디씩 말을 걸었다. 회사에서 키우는 스킨답서스 잎사귀보다 작은 손바닥을 내보이며 네 살이라고 어설프게 입을 벙긋대는 아이가 귀여워서 모두들 어쩔 줄 몰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신나게 까불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엄마 뒤로 바짝 숨어든다. 그러더니 한 명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울상을 지으며 손가락질을 했다. 아마도 까만 피부에 스리랑카인 동료를 보고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스리랑카인 동료는 익숙한 듯 “이모 때문에 그러는 거지?” 라며 애써 분위기를 전환하며 경쾌한 목소리를 냈다. 아이는 바짝 겁에 질려서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당기며 울까 말까 눈치를 봤다. 그러자 스리랑카인 동료가 다른 동료들의 등 뒤로 숨으면서 아이의 시선에서 사라졌고, 아이의 엄마도 미안한 마음에 어설픈 웃음만 지으며 허공에 시선을 둔다.


  한참 수다를 떨던 동료들이 갑자기 애먼 휴대폰 화면을 보거나 말없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내가 아이의 눈높이를 맞춰 쭈그리고 앉자 아이는 계속해서 울까 말까 고민되는 표정이었다. 나는 검지로 콕, 콕 아이의 배를 조심스럽게 누르며 놀란 토끼처럼 눈을 최대한 크게 떴다가 볼에 바람을 잔뜩 넣어서 재밌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금세 별것도 아닌 것에 까르르 웃으면서 방방 뛴다. 


  냉면집이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문이 열리자, 동료들은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 인사를 했다. 나는 스리랑카인 동료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얼굴이 까만 사람은 처음이라 그렇지 세상에 얼굴 까만 사람 많아. 일찍부터 글로벌 시대에 적응해야지~”라고 하자 아이의 엄마가 편하게 웃는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열여섯 개 국가의 통역원들이 근무한다. 그중 얼굴색이 까무잡잡한 동남아시아 통역원들이 내게 자주 말한다. “선생님은 얼굴 하얘서 예쁘다.” 그러고는 내게 물어본다. “날씨가 더워서 얼굴 타면 안 되는데 나 얼굴 더 까매졌어?” 그럼 내가 말한다. “더 까매진 건 모르겠는데 예뻐.” 그럼 내 팔뚝을 툭 치면서 “오늘 메이크업을 내 피부 톤보다 밝게 했더니 예뻐 보이나?” 나는 모니터를 향한 몸을 틀어서 동료를 향해 고쳐 앉는다. 


  “하얗게 칠해서 예쁜 게 아니라 얼굴이 까만 대로의 매력이 있으니깐 예쁘지. 어제처럼 피부 톤에 맞춰서 까맣게 메이크업했을 때가 더 예뻐. 까만 얼굴엔 형광핑크색 립스틱이 진리지” 라며 나는 까맣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새로 산 파운데이션이 얼굴을 조금 더 하얗게 밝혀주는 느낌이라고 말해주길 바랐던 눈치지만 나는 목과 얼굴이 따로 노는 화장법이 예쁘다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얼굴이 하얗게 보인다는 거짓말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까만 대로 아름답다고 말해준다. 그건 진심이니깐.




  언젠가 출근 준비를 할 때 유튜브로 세바시 강연을 틀어놓던 나는 스펀지로 메이크업 베이스를 얼굴에 팡팡 두드려대다가 멈추고 노트북 화면에 집중했다. 영상 속 휠체어를 타고 있던 여성의 말 한마디에 귀로만 강연을 듣다가 화면 속 당찬 얼굴을 응시했다.


  “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어요. 반 친구가 제게 다가와서 너 장애인이잖아, 라며 놀렸죠. 저는 엉엉 울면서 집으로 와서 설거지를 하던 엄마의 등 뒤에서 말했어요. 엄마, 애들이 나한테 장애인이래.” 저를 달래줄 줄 알았던 엄마가 무심하게 설거지를 마치고 제게 다가와서 말씀하셨어요. “너 장애인 맞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보며 저는 잠시 멍해졌죠. 어떻게 엄마가 이럴 수 있을까 하면서요. 그런데 곧이어 엄마가 제 손을 꼭 잡으면서 말씀하셨어요. 


  “네가 장애인인 건 사실인데 왜 울지? 하지만 장애는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그걸 놀리는 친구가 잘못 알고 있는 거니깐 내일 학교에 가면 그 친구에게 말해줘. 나는 장애인이지만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네가 알려주면 돼.” 장애를 핸디캡이라 여기지 않고 자랄 수 있었던 건 어머니 덕분이라던 영상 속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마치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빛을 느꼈다.


  나는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무한한 행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조금 더 명확히 안다. 가끔 살다 보면 잔잔한 들꽃처럼 온화한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을 있다. 몸에 힘을 주지 않고 평온한 눈동자를 지녔지만 단단한 내면의 향기가 배어 나오니 참 신기하다.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 신경 쓰지 않고 마음에 힘을 빼는 만큼 매력적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을 건네는 일보단 당신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일에 힘쓰고 싶다. 편견이나 주관적 판단을 거두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매력이 쏙쏙 보이기 시작한다. 정말 마법 같은 일이다.



- 사진 출처 : https://bit.ly/36CwWaMhttps://bit.ly/3ekGz1O

작가의 이전글 꽃이 피는 자리가 따로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