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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Jul 10. 2021

꽃이 피는 자리가 따로 있다

- 누구의 인생도 예외 없이 존재하는 저마다의 자리

  마음이 헛헛할 때 꽃꽂이를 배웠다. 청량한 바닷소리와 공원에 산책 나온 귀여운 강아지들도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그맘때 일기장엔 ‘암막 커튼을 쳐서 한 줌의 햇볕도 허락하지 않던 창문 밖 담벼락에도 꽃은 폈다’고 쓰여 있었다.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이름 모를 연보랏빛 들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꽃꽂이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말이 없는 꽃이라면 스스로도 감당하기 버거운 내 마음을 바라봐주지 않을까 싶었다. 


  꽃집에 꽃꽂이 수업을 신청하러 가던 날이었다. 쌀쌀하긴 해도 분명 추운 날씨는 아니었는데 마음이 찬만큼 코트 깃을 힘껏 여몄다. 나는 멀리서 십 평 남짓한 그 꽃집을 처음 봤을 때, 마치 아스팔트를 뚫고 심겨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주택가 아이들도 학원에 가느라 바빠서 버림받은 놀이터와도 꽤 벌어진 위치에 꽃집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골목 안쪽. 상가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곳에 꽃집이 혼자 놓여있었다. 그 모습은 상당히 꿋꿋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일부러 도심을 벗어난 주택가 골목길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그 꽃집을 선택했다. 그맘땐 사람들과 관계 맺기에 지쳤던 터라 일주일에 한 번 꽃집에 들러 다양한 얼굴과 향기를 지닌 꽃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꽃마다 얼굴이 달라요. 눈의 방향도 다르죠. 잘 살펴보고 가장 어울리는 자리에 꽃을 꽂아주세요.” 첫 수업 때 원예용 가위와 절화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내게 꽃집 사장이 말했었다. 꽃에 눈이라니. 그런데 놀랍게도 꽃은 저마다 얼굴도 다르지만 얼굴의 방향과 눈의 방향도 엄연히 존재했다. 밑동이 잘린 절화의 줄기를 한 손에 가만히 쥐고 있으면 꽃이 굽은 방향이 저마다 달랐다. 꽃꽂이를 할 때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꽃을 나란히 꽂으면 생명력이 없는 조화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게 꽃도 저마다의 자리를 찾아야만 율동감과 생명력을 얻었다.


  사계절을 거쳐 꽃꽂이를 하다 보니 어느새 계절마다 피는 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몇 해를 거치니 거리에 핀 꽃만으로도 초봄과 완연한 봄. 이른 여름과 늦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사이를 헤아리게 되었다. 꽃꽂이가 취미인 내게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가장 좋아하는 꽃이 뭐예요?” 나는 그때마다 수많은 종류의 꽃을 나열하다가 이내 “너무 많아서요.” 꽃은 모두 아름다워서 가장 좋아하는 꽃을 말하기 곤란하다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사람도 꽃과 같다. 저마다의 얼굴과 방향이 다르다. 취향은 있을지라도 절대적인 기준이란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출근길 담벼락에 능소화가 폈더라고요. 진짜 여름이 오나 봐요.” 나는 얼마 전 회사의 계약직 직원에게 꽃 이야기를 빌려서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 직원은 사무실 한 구석에 위치한 책상에서 혼자 업무를 본다. 이런저런 가벼운 업무를 나눠서 하고 있지만 회사에서는 계약직인 만큼 그녀가 언제 자리에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일만 맡기는 듯했다. 어떤 동료는 그녀의 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랑 하는 일이 다르잖아.” 그 짧은 말에는 무수한 의미가 있는 듯했지만 무엇이 다르냐고 되묻지 않는다. 


 출처  - 내가 직접 만든 꽃바구니


  칼데콧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동화작가 타샤 튜터는 생애 대부분을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일에 열중했다고 한다. 나는 언젠가 그녀의 정원을 담은 영화 ‘타샤 튜터’를 보면서 흐느꼈다. 작가가 평생 가꾼 정원은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지상낙원이라는 별명이 붙은 만큼 유명하지만 꽃이 아름다워서 울었다기보다 모든 꽃이 어우러진 풍경에 감동받았다. 탸샤 정원의 풍경을 담은 사진집 <타샤 튜터 나의 정원>에 아끼는 구절이 있다.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식물을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심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는 모든 식물을 심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의 정원에서 마음껏 꽃을 피울 수 있는 식물을 고르고 그 식물이 좋아할 만한 장소를 궁리해서 찾고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심는다는 뜻이지요. ··· ···. 그러다 보니 차츰차츰 이 땅에서 기꺼이 꽃을 피워주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Tasha Tudor's Successful garden 


  꽃이 피는 자리가 따로 있듯이 사람도 저마다의 자리가 있다. 그곳에서만큼은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분명 존재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 본인의 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살아간다. 영원한 지상낙원은 없듯이 황홀한 향기와 모양을 지닌 꽃도 아무 곳에서 꽃을 피우진 못한다. 그러니 저마다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와 자리가 따로 있다는 건 어쩌면 공평하다. 꽃은 그냥 꽃이라서 아름다운 것처럼 사람이 머무는 저마다의 자리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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