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를 닮아간다> 프롤로그
<프롤로그>
어떤 연애도 이보다 치열하기 어려울 만큼 엄마와 나는 지겹게도 싸웠다. 우리 모녀는 어느 날은 사랑하고 어느 날은 미워했다. 남녀 간의 사랑으로 치면 온갖 치정이 다 버무려진 지독한 사랑일 것이다. 특별할 것 없던 늦은 저녁, 화장실이 가고 싶어 거실 불을 켰는데 엄마가 식탁 밑에서 울고 있었다. 껍데기가 없는 민달팽이처럼 등을 말고 울던 엄마는 네가 나 좀 사랑해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나는 그날 이후 기나긴 엄마와의 싸움에서 백기를 들었다.
바라는 것 없이 사랑하다가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울컥하는 사이. 차곡차곡 쌓인 서운함으로 다신 안 보겠다며 쓴소리를 퍼붓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품에 안기고 싶은 사람. 이처럼 엄마와 딸은 무엇으로도 형용하기 힘든 오묘한 관계일 것이다.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 엄마를 퍽 닮았고, 늙어가는 엄마의 얼굴에서 나이 든 내 얼굴을 가늠해본다. 나는 점점 엄마를 닮아간다. 발가락의 길이나 새끼발톱이 없는 모양새까지도 별 걸 다 닮아가고 있다.
어느 가을볕이 좋던 날, 동네 호숫가에서 엄마랑 김밥 한 줄을 나눠먹는데 문득 행복이라는 걸 알았다. 빨간 단풍나무 아래서 햇볕에 반사된 호수의 잔물결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이 참 고왔다. 나는 엄마가 싼 김밥을 입 안 가득 오물거리다 어쩌다가 우리 모녀가 저 호수의 물결처럼 잔잔해졌는지를 떠올렸다. 아마도 내가 엄마를 더 이상 엄마가 아닌 여자로 보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을 테다. 그리고 엄마는 지독하게 이해 안 가던 딸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이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엄마와의 얘기를 쓰고 싶었다. 단단히 엉킨 실타래도 한 올 한 올 매듭을 풀다 보면 그 끝은 분명 있노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내 글이 살면서 한 번쯤은 엄마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터놓고 싶은 모든 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서툴렀던 엄마 역할에 애잔함을 움켜쥔 채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엄마에겐 언제나 당신 편에 서 있는 딸의 이야기를 나눠주고 싶다. 이번에 엄마 이야기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나서 알았다. 드디어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독자를 위한 글쓰기를 하겠다고 작정한 사실을 말이다.
여느 엄마와 딸처럼 몽글몽글한 이야기만 하진 않을 거다. 이보다 포근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이야기 이면에 더없이 알싸한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할 거다. 도마 위 대파를 썰다 말고 대드는 딸에게 네 같은 것, 뱃속으로 집어넣어 없애고 싶다고 말하던 엄마. 어떨 땐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딸. 우리 모녀의 이야기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조금은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겁내지 않으려 한다.
엄마와 나는 사랑, 미움, 용서, 화해를 온탕 냉탕 드나들며 살다 보니 결국 사랑만 남았다. 기어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엄마와 딸이다. 곁에 있는 엄마가 애틋한 날. 곁에 없는 엄마가 그리운 날. 응어리진 마음속에 볕이 들길 소망하는 모든 엄마와 딸이 회복의 길목에서 마주하면 좋겠다. 엄마와 딸은 누가 뭐래도 살아가는 힘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