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웠고 미안했던
2019년 6월 말, 나는 강남역 6번 출구 한복판에서 엉엉 울었다. 6년간의 연애가 끝난 순간이었다. 두 손에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게 준 선물과 내가 그녀의 집에서 입었던 옷가지들이 담겨 있었다. 공허함, 허무함, 미안함, 아쉬움, 슬픔 등, 그동안 겨우 참고 있던 감정들이 스타벅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햇살과 더위처럼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한 발자국 뗄 때마다 ‘어떻게 하지’라는 말만 되뇌며 집으로 향했다. 얼굴은 하루 종일 울어서 퉁퉁 부어 있었고, 몇 주, 몇 달 동안 회사, 집, 지하철 어디서든 울기 바빴다.
이별은 갑자기 찾아온다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갔던 애버랜드는 우리가 함께했던 다른 장소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날 따라 그녀는 혼자서 돌아다니고 싶어 했고, 같이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뭔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고, 그다음 주에 나는 이별을 통보받았다.
내가 했던 연애 중 가장 좋았고, 가장 슬펐으며, 가장 힘들었던 연애였다.
비록 2년제지만 나보다 선배였던 그녀를 학교에서 처음 본 순간부터, 군대를 다녀오고 고백을 하고 고백을 받기까지 나의 20대는 그녀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좋은 누나 그 이상의 존재였고, 4년 넘게 쫓아다녀 겨우 얻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많이 싸우고, 많이 혼나고,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그녀가 직장을 옮겨 수지구청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도 내가 있었고, 돈을 모아 괜찮은 오피스텔로 이사할 때도 내가 함께했다. 그녀의 친구들과 놀 때도 나는 함께였다. 그때 나에게 그녀를 빼면 남는 것은 없었다.
이별은 작은 불씨에서 시작되었다. 내 말투와 행동이 가끔 선을 넘었을 때가 있었고, 그녀는 그것이 나와 있을 때 종종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 뒤로 그녀의 카톡과 전화, 스킨십은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6년 연애의 결과로 반지를 맞추고 싶다는 내 말에 그녀는 "아직은 조금 더 생각해볼까?"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내 마음속에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고, 나 또한 이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별을 하러 가기 전, 나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편지를 적어 내려갔다.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제까지 함께해줘서 너무 고맙고 혹시 내 생각이 난다면 언제든지 다시 연락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2024년 11월인 지금, 나는 그녀 없이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다. 부모님과 분가하여 혼자서 이사를 시작했고, 가끔 그녀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과거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녀의 절친이 얼마 전에 그녀를 만났는데,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 그녀가 내 생각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동안 다른 여자들과 연애도 했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 왜 직접 연락하지 않고 친구를 통해 이런 얘기를 해야 하나 하는 의문, 내 20대는 그녀였지만 내 30대를 다시 그녀로 채우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 등,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세상에 틀린 선택은 없다. 내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없을 것이다.
깊게, 신중히 생각하고 선택해야 한다. 틀린 선택은 없다. 다만 빗나간 선택은 할 수 있지만, 조금 어긋나더라도 그것 또한 다른 선택을 위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그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나 또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 그때 나를 떠난 것은 우리 둘의 선택이었고, 지금 다시 선택할 기회가 오고 용기를 갖고 다가온다면 충분히 그 선택을 존중할 생각이 있다.
마치 처음 그녀를 학교 도서관에서 만나 연락처를 얻어 연락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