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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Jun 27. 2022

화려한 신고식

한국에서 집을 떠난 지 28시간이 넘어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어학원에 픽업을 요청한 상태여서 짐을 찾아서 픽업 기사를 만나면 된다. 그런데 수화물을 찾는 공간에서 337일을 기다렸다는 피켓을 든 무리를 보았다. 피켓에는 X표시를 하며 날짜를 셌다는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온갖 환영이 문구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조금 뒤에 꼬마가 아장아장 걸어 나오는데, 갑자기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만나지 못한 꼬마의 가족들을 환영하는 온 가족들의 함성이었다. 잠에서 덜 깼는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황해서 인지 아이는 엄마에게 순간 안기었지만 모든 가족들이 반겨주었다. 너무 따뜻하고 행복한 장면을 보면서 갑자기 외로워졌다. 몇 년을 망설였고, 몇 달을 고민했고, 며칠을 잠 못 이루며 힘들게 나왔는데 나는 마중 나온 사람이 없다. 


약간은 서러운 마음에 서둘러 짐을 찾았고 나의 이름을 들고 있는 픽업 기사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어설픈 프랑스어이지만 차 안에서 짧게 이야기를 하면서 40분가량을 달려 프랑스 집에 도착했다. 집 앞에서 어학원 직원이 나를 맞이했고 짐이 많다는 아저씨의 말에 순간 내가 유난스러운가를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가녀린 팔을 가진 어학원 직원이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그 모습이 미안하고 마음이 급해져서 앞서나가다가 중정에서 대자로 넘어졌다. 


어렸을 적부터 부주의한 성격이라 잘 넘어졌다. 이 점은 커서도 변하지 않았다. 항상 멍은 달고 살았는데 그때마다 아빠와 엄마는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땅은 안 무너졌니? 너한테 땅 안 팔어. 그러니깐 똑바로 걸어 다녀.”   

이번에도 동일하게 넘어졌는데 이야기를 해줄 아빠, 엄마가 없다. 하지만 온 동네에 울라라가 외치도록 외쳐준 동네 사람들이 있어서 생각보다는 외롭지 않았다. 방에 올라와서 짐을 풀고 있는데 갑자기 우박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신고식도 크게 했는데 내가 도착했다고 환영식도 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짝 웃음이 났다. 한국에서는 절대 보지 못하는 크기의 우박비가 내렸다. 유리창과 유리 지붕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소리치는 동네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려고 이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불현듯 십 년 전 대학원에 면접 볼 때가 생각이 났다.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갑자기 비가 주르륵 쏟아지기 시작했다. 면접을 망쳤다는 생각에 허탈하게 교정을 빠져나오는 나를 보며 같이 점심을 먹기로 약속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걱정 말라고 이제 비는 그쳤고 하늘은 맑게 개기 시작했다고. 갑자기 이 생각이 나면서 한국에서부터 끌고 왔던, 그리고 비행기에서 잠 못 들게 했던 많은 생각들이 우박 비처럼 떨어져 내려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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