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는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는 지인들은 항상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필요한 것들을 잘 살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내가 한 번씩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면 쉽지 않은 결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선뜻 나에게 시간을 내어 준다.
어학연수를 준비하면서 내 본래의 기질들이 나를 더 뚫고 나왔는데, 그중에 하나는 도움을 잘 요청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결국 공항도 혼자 씩씩하게 왔지…. 나의 이런 마음을 아니 새벽에 공항버스라도 타고 오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운전을 못하는 본인을 자책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신랑이랑 같이 배웅 가기로 했다며 데려다주겠다는 친구를 극구 만류하기도 하며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데도 혹여나 내가 외로울까 봐 출국장에서 몇 시간을 같이 통화해주는 사람들도 있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알아서 해주는 사람들이 없다. 그러니 나는 스스로 해결하거나 도움을 잘 요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프랑스에 오면서 결심했던 여러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도움을 잘 요청하는 사람이 되자는 거였다. 사람은 절대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낯선 땅에서 잘 연습해 보자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해보아도 집에 온수가 나오지를 않는다.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이면서 여독을 풀고 싶은데 온수가 나오지를 않는다. 유학생 커뮤니티를 샅샅이 뒤졌지만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온수 통이 있어서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데, 온수 통은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렇게 헤매다 결국 찬물로 씻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계속 이렇게 찬물로 씻다 보면 감기에 걸릴 거라는 생각에 앞서 염치 불고하고 창문이 열려있는 1층의 노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흔쾌히 나의 집으로 동행해 주었다. 두꺼비 집에 있는 여러 버튼을 누리기 시작하셨고 이윽고 온수가 나왔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면서 집주인 아저씨에게도 전화로 음성 메시지도 남겨주셨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집주인 아저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해결되었냐며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냉랭할 것만 같았던 프랑스 사람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그냥 지나갔을 일이다. 며칠을 찬물로 씻은 듯에 임대료를 지불하는 날에 집주인 아저씨에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하니깐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다음날 한국에서 가져온 모나미 볼펜을 1층 집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한국의 볼펜인데, 오래된 전통이 있는 볼펜이에요. 이름은 Monami에요.”
할아버지는 귀여운 이름이라면서 온수가 해결된 것은 정말 잘 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식탁에 내려놓았다.
식탁에 던져놓듯이 내려놓아서 잠깐 마음이 상할 뻔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는 도움을 잘 요청했고 그 도움에 고마운 마음을 잘 표현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그러니 괜찮다. 하며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모나미(Mon ami)는 프랑스어로 ‘나의 친구’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한국 기념품으로 무엇을 사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모나미 볼펜을 여러 개 사가지고 왔다. 실용적인 선물이면서도 친구라는 의미가 있어서 나를 도와주거나 의미 있는 만남을 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볼펜을 벌써 하나 사용했다. 이런 내가 너무나도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