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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Jun 13. 2022

프랑스에 가야하는 이유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로 유학을 결심하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이유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한때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거실 책장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 들 중에서 세계 어린이를 소개하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에서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유년 시절에는 막연하게 파리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살면서 유일하게 부모님이 반대했던 것이 미술을 하는 것이었다.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예민한 내 기질을 알아서 더 반대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파리에서 공부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나의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삼십대 초중반의 나는 덜 행복했다. 이유는 결혼이었다. 그렇게 결혼을 원했으면서도 누군가를 만나게 돼서 결혼을 이야기하면 겁을 먹으며 헤어졌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조금은 더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당당히 여행 다니면서 놀았다. 국내 여행은 물론, 이스라엘과 프랑스도 다녀왔다.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두 번의 투어를 했었다. 첫 번째 투어로 몽생미쉘을 다녀왔는데 길고 긴 이동시간 속에서 여행 가이드가 도시계획 쪽을 공부했다는 말에 “언니는 다시 프랑스에 와야겠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남부 프랑스의 발랑솔 이라는 마을에 라벤더를 보러 가면서 만난 언니는 나에게 보르도에 있는 친구 결혼식을 다녀오면서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되면, 꼭 프랑스에서 해요.”라고 이야기했다. 


또 내 이름은 어떠한가. 내 이름은 프랑스어로 중심, 가슴(유방)이라는 단어이기도 하고, 이름에 e를 덧붙이면 센 강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를 가야 하는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자신이 없었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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