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영 Jun 13. 2022

사실, 나 가기 진짜 싫어.

나는 워낙 겁도 많고 낯도 가린다. 어렸을 적 학교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두들겨 본 다리조차도 지팡이를 짚고 가야 하는 아이’였다. 게다가 예민하기는 또 얼마나 예민한지. 이런 내가 다른 나라에 가서 산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동안의 연애들이 결혼이라는 결과에 실패했었던 이유는 해외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 해외 생활을 해온 사람들을 동경하며 좋아하면서도 실제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이런 나를 잘 알기에 조금이라도 프랑스에 정을 붙여보고 싶어서 언어 공부 외에도 그곳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랑스를 알아갈수록 더 가기 싫어졌다. 게다가 프랑스 여행에서 겪었던 사소한 일들과 함께 지린내 나는 파리 거리가 매일같이 생각이 나서 한국에 남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도 두렵고 나에게 익숙하고 편리한 생활에서 벗어나 어린아이처럼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것도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통장의 돈이 바닥나는 것도 두려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안정적인 회사의 공고가 올라오면 한국에 남아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당시 다녔던 회사를 계속 다니기에는 여건상 좋지 않아 한국에 남는다면 이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본 채용사이트 공고에서 5급 공무원 경력직을 뽑는 것을 보았다. 프랑스를 가지 않으려면 그 시험에 붙어야 했고 나는 매일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총 6시간을 공부하면서 시험을 준비했다. 게다가 회사도 바쁘고 정신없었다. 그래도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 해 여름을 갖다 받쳤다. 그렇게 시험 당일을 맞이하게 되었고,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첫 과목이 너무 어려워서 실망하며 집에 갈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에 자리를 억지로 지켰다. 그 후로부터 몇 개월 뒤, 결과는 합격이었다. 말도 안 되는 결과였다. 시험을 본 사람은 있으나 붙은 사람은 없다는 경력직 시험에 붙다니. 그래, 그 자리는 내 자리이구나. 하지만 일찍 터트린 샴페인은 거품만 가득했다. 결국 마지막 관문까지 가지 못했고 그 여파는 한동안 오래갔다. 


자괴감이 들면서 내 인생이 다 실패한 것만 같았다. 나는 생각보다 너무 많이 기대했었나 보다. 그 직업을 갖게 된다면 온갖 호구 취급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연금으로 노후도 책임질 수 있게 되며 연로한 부모님과 계속 한국에서 살 수 있으니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기회는 아주 쉽게 사라져 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 프랑스 어학원을 계속 다니면서도 프랑스로의 유학은 후순위로 밀리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씁쓸한 마음으로 가을과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다 연말쯤에 다른 부처에서 경력직 공무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았고 또 응시했고 떨어졌다. 이렇게 두 번의 시험을 준비하면서 더 강력하게 한국에 남기를 원했다. 심지어 어떤 날은 꿈을 꾸기도 했다.  꿈의 내용인즉은, 어느 한 기관에서 경력직 직원을 뽑는데 그 조건들이 내가 가진 경력과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너무 생생해서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 기관에서 공고가 올라왔고 채용 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보기 좋게 또 미끄러졌다. 


나는 바보같이 마지막으로 시험에 응시했던 회사는 나만 갈 수 있는 자리라 또 착각하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 시험에 붙게 된다면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한국에 남아야 하는지, 프랑스에 가야하는지.’프랑스로 공부하러 가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서 프랑스 학생비자를 받기 위해 준비하면서도 내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너의 삶을 강요하지 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