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인터뷰가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프랑스 대사관 영사과에 악명 높은 여자 직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누누이 들었기에 긴장하는 마음으로 대사관을 향해 떠났다. 집에서 대사관까지는 두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최근 울렁거리는 마음 때문에 어디를 나가지 않아서 허리가 매우 아파왔다. 스무 살 이후로 약 20년은 수 백 번은 다녔던 길인데, 그 순간만큼 그 길이 길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게다가 긴장에 긴장을 하다 보니 입안은 마르다 못해 쓰기까지 했다. 그렇게 긴장을 하며 대사관이 있는 역까지 도착했다.
인터뷰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기에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사가지고 나와 쭉쭉 빨며 대사관으로 향했다. 잠깐의 긴장을 식히기엔 커피 한 잔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영사과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더 크게 당황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새하얀 벽이 나를 맞이했고, 거기에 직원이 앉아있었다.‘아, 여기부터 진짜 프랑스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행정기관에 보편적으로 있는 민원인을 위한 별도의 휴게실이나 대기실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당황함과 동시에 들고 있는 커피를 쏟아버렸다. 당황하고 있는 나를 보고 친절한 직원은 함께 커피 얼룩을 닦아주었다. 그 뒤에 그 친절한 직원은 인터뷰 절차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계속 황하고 있는 나를 향해, 챙긴 물건들이 정확히 있는지 연신 확인했다. 친절한 직원 덕분에 나는 문제없이 인터뷰하는 장소를 들어갔다. 아, 물론 어느 때보다 긴장의 강도는 강했다. ‘제발 그 여자 직원만 안 걸리게 해주세요.’라며 간절히 기도했고, 다행히도 프랑스 남자 직원이 내 이름을 불렀다. “Bonjour”를 외치는 나에게 “안녕하세요.”로 답을 했고 이상하게 더 긴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자 발급 비용을 결제하려고 꺼내든 카드 두 장은 결제가 불가능한 카드였다. 왜 유학원에서는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라는 원망 섞인 마음이 생겨났다. 그래도 다행히 혹시 모를 마음에 어젯밤 엄마와 함께 종류대로 준비한 현금 덕분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딱 맞게 지불할 수 있었다. 그냥 이대로 끝났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C'est tout? C'est finii?”를 쉴 새 없이 외쳤고 그 외국인 직원을 웃음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비자 발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고 정확히 3주 뒤에 비자가 붙은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나는 공기업에서 약 10년을 근무했다. 그런 내가 장담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우리나라 전자 문서 시스템과 담당 공무원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물론, 전자 문서는 세계 1위를 앞다투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는 한국인은 프랑스 비자 발급을 한 번 하고 나면 우리가 얼마나 편리한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게다가 서류의 나라이자 생산자의 나라인 프랑스의 행정은 한국인에게 악명 높은데, 비자 발급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이 많다. 오늘 나는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며 미숙했다. 이런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것처럼 프랑스에서도 다정하게 대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