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시기를 한 달 남겨놓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산 물건은 28인치 캐리어 두 개다. 평소 나의 여정을 함께해주었던 큰 캐리어가 있었는데 캐리어가 수명을 다하고 있기에 새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캐리어가 집으로 배송되기까지 쉽지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하여 대부분의 수입 업체들이 사업을 정리한 상황이어서 선택지가 넓지 않았다. 힘들게 캐리어를 찾아 주문하면 물건이 없다는 이유에서 취소당하기 일쑤였다. 최소 사유는 코로나로 인하여 해외여행이 줄어들게 되면서 캐리어 생산은 당연하게 중단하게 되었고 그나마 생산을 하고 있던 업체들은 중국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 봉쇄로 인하여 한국으로 수출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는 캐리어를 찾고 주문하고 취소되고 하는 것들을 연속적으로 반복하며 며칠에 걸쳐 겨우 캐리어를 살 수 있었다. 그마저도 출국 바로 전에 배송 가능하다고 했었는데, 사정을 이야기해서 업체 측에서 수배하다시피해서 보내주었다.
캐리어가 해결되자마자 이틀 뒤에 항공권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모든 항공사의 스케줄이 변경되었다. 러시아가 영공 통제 국가를 지정하고 러시아 영공을 폐쇄하기로 발표했다. 그래서 일부 항공기(사실 대부분의 항공기)가 러시아를 통과하지 않는 우회 노선으로 항공기를 운항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내가 발권한 비행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정대로라면 주말의 경우 토요일에 두 대, 일에 두 대, 이렇게 네 대의 항공기를 운항하는데 토요일 새벽 한 대의 비행기만 운항하게 되었다. 나는 토요일 오전 9시 비행기를 발권해 놓은 상태인데 새벽 2시로 비행기의 스케줄이 변경되면서 전날 공항에 가야 하고, 어학을 하기로 한 도시를 가기 위해서는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에서 7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겨났다.
캐리어와 항공권 변경을 하며 내가 참 안전한 곳에서 살고 있음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공기업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정부의 코로나 정책과 높은 시민의식 덕분에 코로나에 걸리지도 않고 건강하게 지냈었다. 그래서 불만이라면 가족여행으로 발권해 놓았던 항공권의 환불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나, 친구를 맘대로 만날 수 없는 것, 더운 여름에도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내가 아무렇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불불만 하는 사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많은 노력들이 나를 대한민국이라는 안전한 나라에서 대수롭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잘 지켜주고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을지 모르는 순간들이지만, 참 감사한 순간들이다. 이제 한국이라는 우물을 나가게 된다. 곧 프랑스라는 우물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안에서는 조금 더 넓게 보고 넓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