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칭 가족 바보이다. 가족의 일이 가장 우선이다. 몇 년 전 우리 가족에게는 중고차 사기라는 큰 사건이 있었고 나에게 가족 바보를 만들어준 계기이기도 하다. 아빠가 나이가 많다 보니 운전할 수 있는 기간이 많지 않을 것 같아 중고차로 구매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중고차 금액을 다 지불하고 차량을 인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차량등록증이 우리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에게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일명 가해자는 따지자면 사돈과 같은 사람이었는데 민․형사 모든 것이 걸려있는 문제였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와서 꽤나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뒤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부모님이 억울한 일을 겪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그래서 조금의 불이익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빠의 업무에서부터 엄마의 장보기 일까지 크고 작은 일들을 도맡아왔다. 이렇게 나는 가족 바보가 되어서 모든 일을 내가 직접 해결해왔고 당연하게 가족들은 나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가족들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한동안 출국하는 문제로 속상했었다. 아니 초라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출국 날,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빠는 새벽에 일찍 출근하시기에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엄마는 운전을 못하신다. 언니는 투병 중이어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가족한테는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아빠가 하시는 일을 잠깐 쉬게 되면서 아빠가 시간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출국 시간이 새벽으로 변경되면서 이 조차도 쉽지 않게 되었다.
아빠와 엄마는 공항에 배웅 나오고 싶어 하셨지만 나이가 연로한 아빠가 야간 운전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키오스크로 주차료 결제를 해야 하는데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물론 가능 하겠지만 딸을 보내놓고 울컥하는 마음에 실수를 계속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출국장에 들어가서도 부모님이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 11시가 넘는 시간에 불이 꺼진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하기에는 떠나는 나도, 돌아가야 하는 부모님도 너무 마음이 슬퍼질 거 같아서 혼자 당당하게 가겠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