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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갑니다 Jul 14. 2021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빠 그리고 우리

막장인 줄알고 읽어보았을 자극적인 첫 문장에 죄송합니다. ^^;

믿음이 의심이 되고 깨지는 순간 마음이 쓰라렸다.


연애 4년 반 결혼 4년 반의 기간 동안 열렬히 사랑하고 격하게 싸우며 나도 모르는 믿음이 생겼다.

이 남자에게는 언제나 내가 첫 번째일 것이라는 확신,

시간이 지나고 아기가 생겨도 언젠가 와이프가 먼저인 남자들이 간혹 있다던데 그게 나의 남의 편일 줄 알았다.  겁도 없이 어디서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ㅎ


막상 아기가 생기고 나니, 언행이 상당히 불일치한 남의 편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조금씩 슬퍼졌다.

그리고 어제, 슬픔이 쌓인 자리는 결국 상처가 되어 아팠다.


신랑이 퇴근하자마자 자랑스럽게 뭔가를 꺼내놓았다. 

내가 쓰라고 해서가 아닌 본인이 원해서 쓴 것이라는 편지에는 자신의 아기를 키워주는 아기 엄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가득 그리고 약간의 현금이 있었다.


하나도 기쁘지가 않고 세 번을 읽었는데 점점 더 서글퍼지기만 했다.

참았어야 했는데 참지 못하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날은 결국 파국으로 끝났다. 헤헤

기분이 잔뜩 상한 남편은 본인도 내 편지를 받았을 때 항상 기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냐부터 시작해서 다시는 편지를 쓰지 않을 거라는 남자 특유의 남자가 되어 내 속을 박박 긁었다.

지금 서로 이야기해봤자 더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아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을 해서 미안하다는 말로 그날을 마무리했다. 

그동안의 시간으로 때로는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기고 싶었다기보다는 지금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으로 더 큰 부스럼을 만들어서 얻을 것이 없었다.


아기를 낳고 한동안 한참을 다짐했다.

이제 아기 아빠로만 대하고 나 또한 아기 엄마로서 '남편'에게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실망할 것도 없을 거라고. 

다짐은 늘 무너졌고, 따뜻하진 않지만 ( 따뜻함은 내 담당 히히) 자상하고 한결같이 아껴주던 오빠의 모습을 찾아 헤매다 혼자 제 풀에 지치곤 했다.


그렇게 평일이 지나가고 토요일 저녁엔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조촐하게 치즈와 샤퀴테리를 준비해 와인을 마셨다.


잠깐 옆으로 새서, 집에서 마시는 와인은 참 따뜻하다.

공간이 주는 아늑함, 시간이 주는 여유로움까지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기 딱 적절한 술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세상 알아주는 알쓰..)


이런저런 이야기 중 남편이 '아직도 너를 많이 좋아하'라는 말만 했을 뿐인데

마음에 있던 응어리가 반쯤 풀렸다. (미쳤다. 나란 여자 너무 단순하다..)

아기의 엄마가 아닌 나로 봐줬으면 한다는 나의 말에 신랑은 

지금은 아기에게 집중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집중하고 있을 뿐, 언제까지 이렇지는 않을 것이며

나도 너도 각자의 자리에 돌아갈 거라는 것,

우리의 행복한 시간이 모여 아기가 생겼기에, 아기가 웃고 있을 때마다 나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이 요즘 들어 더 자주 생각이 난다는 말을 했고 

결국 나머지 반절의 응어리도 풀려버렸다.


역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너무 다른 것 같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미운 점만 생각났는데, 대화 끝에 생각해보니, 예쁜 것만 눈에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미운 점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중간중간 스팀으로 뚜껑이 열리기도 하지만, 

이런 일상들로 시간을 채워나가며 소소한 행복을 좀 더 오래 느끼면서 살아야겠다.

아기의 엄마 아빠라는 가족으로서의 우리도, 행복한 커플의 우리도, 

그리고 너와 나 자신이 공존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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