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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갑니다 Nov 04. 2020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고찰

끊임없는 갑론을박, 이대로 괜찮을까

임신 후 23주차에 돌입했다. 6개월 + 2주가 꼬박 흐르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뱃 속은 마치 어항이 된듯 뭔가가 하루종일 꼼지락거리고

가슴과 배가 제법 커져 고대 비너스상과 같은 모습이 되어가고 있고

각종 통증과 자다가 쥐가나 악! 하며 일어나는 일상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있다.

All Day PMS로 기분은 늘 오락가락하고

소화불량과 식욕 폭발은 여전히 번갈아 오고 있으며

온 몸이 붓고, 잇몸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타인이 나를 보는 인식 하나는 기가막히게 고대로이다.


특히 대중교통에서. 


운전이 서툴고, 서울 시내에서 시내로 출퇴근을 해야하는 나의 통근길은 

지하철이 최적의 수단이다.

지하철에는 '임산부 배려석' 일명 핑크석이 있었다.

'임산부 배려석 제도'는 2013년 12월부터 서울시의 여정정책의 일환으로 서울 시내 버스, 전동차에 넣기 시작한 제도라고 한다.  
  

이런 제도가 생긴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사실 그 동안 관심 없었고, 그 오랜 기간 이토록 긴 갑론을박이 계속된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그 동안은 내 자리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앉아본 적도 없다.

간혹 임신한 친구들의 출퇴근 죽는 소리를 들어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겨짚었다.


하지만 나의 일상이 되고 나니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했다.

배가 거의 나오지 않았을 때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더 당황 스러운건 임산 기간의 절반은 사람에 따라 절반 이상 배가 나오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직접 겪어보니 임신 초기가 훨씬 더 힘든게 사실이다.


생각보다 자리자리마다 남녀노소가 골고루 앉아 계시고 

10-4에서 1-1까지 걸어가보아도 남는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호선 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자리 앉기는 커녕, 사람이 많으면 임산부 택 조차 안보이기 마련이다.

아! 물론 임산부 배려석, 핑크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너무 힘든 날은 앉아있는 사람 스마트폰 앞에 임산부택을 달랑달랑 흔들어보았으나 미동도 없었다. 

성별과 나이는 비중의 차이일뿐. 

배려를 해주시는 분은 그 자리를 비워두거나 배려석이 아닐지라도 양보를 해주신다.


어떤 하루의 퇴근길, 정말 몸도 마음도 지치고 우울한 채로 집에 가는데 이 자리가 뭐라고 눈물이 찔끔 났다.

자리 양보를 받지 못해 화가나는 마음도 있지만

괜한 '배려석'이라는 제도 때문에 

나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 자리 하나 앉기 위해 너무나 많은 감정소모를 하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


그나마 임신이 순조로운 편이고, 편도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나조차 이렇게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데,

더 열악하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다 못해 경부 길이가 짧아져 매일 아침 저녁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초조해하는 내 친구만 보아도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이 매분 매초 몸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제도의 개편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반대로 임산부 배려석의 폐지를 청원해볼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배려석이기에 배려를 강압적으로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여성의 자궁이란 우리 모두 한 때 머물렀던 공간이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고 말할거라면 차라리 아픈 환자라고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마음 상해가면서 양보받길 구걸해야하고, 힘들게 현실을 부딪히는 일 또한 정말로 쉽지 않다.


그리고 정말로 .. 하루하루 고통의 연속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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