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해를 남발하기 시작한 것은. 그게 어떤 건지도 모르고 나는 자꾸 많은 것들을 사랑한다. 어렸을 때는 집 앞 마당에 붙어있던 매미가 죽어서 울었고, 할아버지가 잡아온 물고기가 죽지 말라고 몰래 풀어주기도 했다. 처음으로 키워본 햄스터가 죽었을 때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고, 지나가는 계절들이 아쉬워서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적 나의 사진들이 담긴 앨범에는 계절별 나의 모습들이 담겨져있다. 봄에는 유채꽃 축제에 가서 나비 옷을 입고 찍은 사진, 여름은 오리 튜브를 타고 수박을 들고 찍은 사진, 가을엔 엄마와 함께 낙엽 밑에서 찍은 사진, 겨울은 아빠와 함께 만든 눈사람 옆에서 찍은 사진. 그렇게 나는 계절들을 온 몸으로 아쉬워하고 지나가는 것들을 계속해서 추억했다.
최근에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에게 주는 만큼 나도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신이 소진되고 있었다. 난 그동안 많은 것들을 온 힘을 다해 사랑했는데.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했고 혹여나 깨질까봐 소중히 다뤘는데. 왜인지 그것들이 그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슬퍼졌다. 내가 아무리 소중히 다루어봤자 결국 깨져버리는 건 한 순간이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사랑은 그렇게 멀어진다. 내가 사랑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어서, 사람들이 다들 바빠서, 사랑할 여유가 없어서. 그래서 그런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고 싶지만 마음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J는 내게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걸 두려워하지는 마. 넌 사랑받을 자격 있는 사람이야. 분명 네가 주는 것보다 과분하고 커다란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을거야. 알았지?
사실은.. 이제는 사랑이 무섭고 두려워졌다.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사랑 주변을 기웃거렸던 내 자신이 너무 안쓰러워서, 오래도록 사랑을 꿈꿨고 많은 것들을 사랑했지만 그건 단지 내 일방적인 소망과 환상일 뿐이었어서. 그래서 이제는 그게 지쳤다. 이제는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받고 싶다. 마을 뒷산 울타리 너머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내 모습을 누군가 알아차리고 다가와서 손을 내밀어 줬으면 좋겠다. 은주야 왜 여기있어? 나랑 같이 마을로 돌아가자. 누군가 그렇게 용기내어 나에게 다가와서, 나에게 다시 이런 세상도 있다는 걸 알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많이 지쳤고 아프다. 누군가 내가 있는 곳에 제 발로 찾아와서 날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해치우듯 쉽게 모든 것이 이뤄지면 좋을텐데.
물론 내가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제나 안위를 걱정하고 부족함없이 사랑해주는 가족들과 친구들. 나의 주위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그리고 내가 이뤄온 모든 것들이 나를 형성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욕심많게도 계속해서 더 사랑받길 원하고 사랑을 말한다. 오늘도 나는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을 기웃거린다. 이 세상에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