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내 세상으로 초대하는 일

여성주의의 관점으로 바라본 출산

by 이여름


한국에서 저출산은 이미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한국은 이제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더 이상 출산과 결혼은 필수가 아닌 것이 되었고, 삶의 목적을 이루는 궁극적인 목표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이것을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분석해보려고 한다.


첫째는 우리 사회가 그려내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부담스럽다는 것에 있다. 최근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그려진 엄마의 모습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노모는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고 도박에 빠진 아들로부터 모아둔 돈을 알게 모르게 갈취당하며, 아내는 돈이 많은 남편과 재혼함으로써 딸을 꾸역꾸역 키워냈다. 이 드라마 뿐만 아니라 많은 드라마나 예능, 영화에서는 누군가에게 헌신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ㅇㅇ맘’이라고 표현한다. 엄마의 이미지란 예전부터 행복한 것이라기보다는 부담과 희생, 헌신이 더 크게 따르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크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인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현대의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저혼자 먹고 살기도 바쁜 사회 속에서 희생을 해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둘째는 아직까지 직장 생활에서 여성의 출산은 곧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있다. 소설가 한강의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여자 직원은 결혼과 함께 퇴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귀중한 모성을 보호받아야 하므로 가정과 직장을 양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그 회사는 대학을 갓 졸업한 여성을 주로 채용했고, 그녀들이 이십대 후반에 결혼해 회사를 떠나게 되면 다시 미혼의 여성을 고용함으로써 인건비를 최소화했다.- p.26


아직까지 직장을 다니다가 임신을, 혹은 결혼을 하는 경우는 축하를 받기 보다는 ‘조직에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파리바게뜨에서는 임신을 한 제빵 기사가 ‘직장 스트레스를 받아 유산을 하더라도 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제빵 기사는 임신 전과 후의 차이 없이 똑같은 일을 해야만 했으며 , 회사측에 조금이라도 일을 줄여달라는 요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 말고 일할 사람은 많으니 그럴거면 그만 두라’ 는 식의 압박을 받았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경제활동인구 중 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의 비중이 20대 후반까지는 84%를 넘지만, 30대가 되면 55%대로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30대에는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특히 30대 후반에 더욱 늘어난다. 임신 자체가 패널티가 되는 사회,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가 무너지는 사회 속에서 어떤 여성이 임신을 하고 싶을까? 결혼한 여성들은 엄마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 반면 노동시장에서 화폐를 벌어들이는 역할까지 요구받는다.특히나 한국의 여성들은 건강한 자녀를 출산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훌륭한 어머니가 될 수 없으며, 자녀교육을 잘 끊임없이 관리하여 학업성취도를 높이고 또 이를 위한 교육비를 마련할 수 있는 수입도 벌어야 한다는 이중압박을 받고 있다.




나를 낳다가 죽을 뻔한 엄마는 어려서부터 내게 “제발 아이만큼은 낳지 말라”는 주입식 교육을 해왔다. 그것은 결코 “네가 태어남으로써 엄마 인생이 망했다”는 , 일종의 자존감을 깎는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그녀가 죽을 뻔 했기 때문에 딸을 걱정하는 엄마로서 한 말이었다. 엄마는 아직도 출산 후유증으로 고생을 한다. 그런 엄마의 고생을 곁에서 오랫동안 보아와서인지, 나는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악의없이 ‘신기하다’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어느정도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까지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감정인지에 대해 상상을 해보고는 하지만 ,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최근 7년 만에 만나게 된 친구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신의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고졸로서는 7년 만에 처음으로 그 단단한 벽을 깨고 고학력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놀라운 친구였다. 어느 정도 경제적인 상황이 해결된 그 친구의 삶의 목표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친구는 말했다.


“여름아. 난 성공같은 거 모르겠어. 성공이 뭔지도 모르겠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걸 쫓고 싶지는 않아.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어. 나를 닮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궁극적인 이유라고 생각해 ”


친구를 보며 느낀 것은, 누군가에게는 자식을 낳는 것이 자아실현과 인간 성숙을 향한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출산은 결코 어떤 경험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에서 몇 번 안되는 특별한 경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런 특별한 일이 어느순간부터는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고, 급기야는 회피하게 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없이 희생하는 면이 있는 내가 아이를 낳은 모습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왜인지 내 자신보다도 아이를 더 사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나보다도 사랑하는 아이가 이 시대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아프고 벅차다. 내가 겪어온 전쟁같은 경쟁 사회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올 자신이 없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이럴 것이다. 출산을 하고 싶은 사회, 가족을 이루고 싶은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개인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문제에 대해 샤우팅을 하고 그러한 토론의 과정을 통해 세상이 바뀐다. 나 또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마음놓고 출산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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