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억
D는 나의 여름을 그렇게 회상했다.
“그때 너는 여름을 온전히 온 몸으로 느끼는 사람 같았어.하루종일 웃고 있는거야. 행복한 일이 생겼나? 봉숭아가 사람이라면 바로 너라고 표현하고 싶었을 정도로, 그렇게 생기에 가득차서 하루종일 홍조를 띤 사람을 오랜만에 봤어. “
겨울이 되어 돌아보는 나의 여름은 한층 더 푸르고 짙다. 화사함이라고는 눈송이 뿐인 황량한 겨울에서 초록과 햇살이 만개한 여름을 바라보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다. 이 날의 여름날은 그랬다. 하루 종일 제주의 작은 마을을 돌아다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충 가벼운 꽃무늬 원피스를 챙겨입고 브런치를 먹고, 마음이 가는대로 돌아다녔다. 최대한 가볍게 다닐 수 있는 여름에 우리는 마룻바닥에 앉아 첫사랑을 떠들었고 오늘 우리가 겪은 세상에 대해 말했다. 태도 마저 투명하게 만들어버린 에메랄드 바다는 이유없이 날 웃음 나오게 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히피처럼 사진을 찍고 모래를 뒹굴며 시집을 읽은 날, 그러다 이상한 남자에게 번호를 따이고 결국 그를 피하기 위해 빠르게 숙소로 들어온 일, 번호까지 차단한 뒤 편의점을 나왔다가 다시 그 남자를 마주친 시트콤 같은 일, 빈티지 소품들을 진득하게 구경하고 괜히 의미부여를 하며 구매해보기도 한 일, 영원할 것 같은 여름에 온 몸을 맡기고 괜스레 새벽에 사랑을 고백해보는 일. 우리는 여름에 완전히 포로되었다.
청춘의 맑음을 가득 담은 날의 여름. 빈티지샵에서 충동으로 새로 구매한 수영복을 입고 바다를 가기도 했다. 실컷 물장구를 치고 계절을 느낀 뒤 , 각자 좋아하는 사람의 선물을 고르고 행복해하며, 서로의 연애상담을 나누고 고민을 이야기한 날이 한가득 떠오른다. 온 종일 두근거렸던 이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설렌다. 여행에서 즉석으로 만나게 된 사진 작가님과 함께 차를 마시기도 하고,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틀어두고 아몬드를 먹으며 방명록을 남기기도 했던 날의 기록.갑작스러운 일들이 모두 허용될 것만 같은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