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의 일꾸니가 말했습니다
‘일사이트’를 주는 일꾼들의 말을 기록하기로 했다. 제1의 일꾼은 나다. 사실 나는 누구나 인정하는 ‘일잘러’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가서 욕은 들어먹지 않을 정도로 일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10년동안 ‘일꾼’으로 살아오면서 내가 얻은 일사이트는 “디테일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함께 사는 사람과는 대화의 절반 이상이 ‘일터’ 이야기인데 주로 내가 상대방의 고민을 들어주는 편이다. (왜냐면 그는 이제 7년차 일꾼이니깐) 그 고민의 결과는 대부분 “네가 디테일이 부족했다”로 끝이 난다.(매번 같은 답을 해주는데 왜 안 고쳐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에 그가 들고 온 고민은 이렇다. 가장 높은 상사에게 보고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피드백을 중간 상사에게 받아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장 높은 상사는 ‘얼른 보고하라’고 재촉했고, 피드백을 줘야 할 중간 상사는 화장실에 갔는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이때 당신의 선택은?
함께 사는 이는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중간 상사를 건너뛰고 지금까지 완성된 버전으로 가장 높은 상사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것이 탈이 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중간 상사는 이 사실을 알고 안색이 굳어졌고, 급기야 함께 사는 이의 인사를 안 받는 상황까지 간 것이다.
물론, 당연히, 반박의 여지없이 중간 상사가 쪼잔했다. 하지만 우리가 상사의 엄마도 아니고, 남편이나 아내도 아니며, 내 자식도 아닌데 그의 쪼잔함까지 고쳐 쓸 이유도 여유도 없지 않은가. 또 그 직장 나름의 룰이나 분위기라는 것이 있을텐데 내가 굳이 ‘잔다르크’가 될 필요도 없고 말이다.
함께 사는 이에게 “네가 디테일이 좀 부족했네”라고 말했다.
가장 높은 상사에게 현재 상황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제출까지 시간을 벌면 가장 좋았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경우 중간 상사에게 카톡을 보내 “윗분이 지금 발 동동 난리다. 일단 제출부터 하겠다”라며 과장을 약간 섞어 지금 당신을 건너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잘 묘사해 전달했더라면 중간 상사가 조금 덜 쪼잔해졌을 것이다.
회사는 큰 프로젝트 단위로 굴러가지만 결국 그 프로젝트를 만드는 건 일꾼들이고, 결국 일꾼도 사람이다. 내가 조금 귀찮더라도 디테일을 챙기면 그 다음 단계의 일이 쉬워진다. 디테일이라는 게 사실은 별 게 아니다. 중간상사에게 ‘내가 이러이러한 상황이다’라고 한번 더 설명해서 이해를 돕는 거다.
집안일로 비유를 해보자. 외출을 하기 전에 함께 사는 이에게 ‘설거지 미션’을 주고 나갔다. 그런데 돌아왔는데 설거지가 그대로다. 미션을 받은 사람은? 자고있다. 나는? 빡친다. 그런데 이때 미션을 받은 사람이 “내가 사실은 갑자기 배가 아프고 그래서 설거지를 못 했다”라고 설명해준다면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되면서 빡침이 누그러지지 않을까. 설명해주기 전에 상대방은 당신의 상황을 모른다.
누군가는 어떤 프로젝트를 발제하기 전에 일주일 동안은 동료들과 티타임을 하면서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료들에게 아이디어를 구한 상태에서 프로젝트 발제를 하는 것과 어느날 갑자기 딱 발제를 내놓는 것의 결과물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단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듣고 거기에 의견을 보태는 과정을 겪은 동료들은 일종의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그럼 결국 자신의 의견이 섞인 프로젝트에 반박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또 이미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동료들의 이해도가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에 이후 진행 과정 역시 수월해질 수 밖에 없다고.
동료들에게 시간을 따로 빼서
의견을 묻는 과정이
귀찮을 것 같다고?
이 작은 디테일한 과정이 결국 프로젝트의 시작이자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