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일꾼의 말
“회사는 알바생의 마음으로 다녀야죠.”
제2일꾼의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직장인의 책상 중 가장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오래 유지되었던 일꾼.
회사 책상에 제2의 살림을 꾸리는 일꾼들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책상은 없었다. 일종의 회사 미니멀라이프를 실천 중인가 싶었다. 있는 것이라곤 옆에 두고 마실 물컵, 슬리퍼, 업무에 필요한 노트북. 다들 이 일꾼의 자리를 찾으러 왔다가 ‘혼란’을 느끼고 떠났다. 이 분은 곧 퇴사하나요? 이 분 자리는 임시인가요? 이 분 조직이동하세요?라는 질문이 꼭 따라왔다.
언젠가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이렇게 책상에 아무 것도 없어요? 안 불편하세요?”
그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회사는 알바생의 마음으로 다녀야죠.” (아니.. 알바생 책상도 안 그렇다고요..)
의외였다. 이 일꾼은 평소에 ‘알바생의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기엔 너무나 일잘러였으며, 동료 평가도 좋았다. 일 욕심도 있어서 시키지 않은 일도 알아서 꾸려나갈 정도였다. 뭐지? 겸손의 말인가. 아니면 “나는 이런 마음으로 일하는데도 이 정도로 일 잘 하는데 너는 뭐하니”라는 돌려까기인가.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세 곳의 회사를 다니면서
내린 결론은
두번째 일꾼은 두 번의 이직을 거쳐 이곳이 세 번째 직장이라고 했다. 세 곳의 회사를 다니면서 스스로 내린 결론은 ‘회사에 충성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당시엔 이거 못 하면 마치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싸우고 스트레스 받아도 결국 제3자의 시선에 보면 ‘굳이 저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아주 티끌같은 일로 어마어마한 감정 소비를 하고 있었다는 ‘현실자각타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일을 잘 하는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그렇게 회사 생활을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내 일’에는 충실하되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일종의 ‘알바생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고 보니 내 일에 더 집중이 되더라고요. 이러쿵저러쿵 일 이외의 이야기가 더 많은 회사 안에서도 그런 기류에 휩쓸리지 않고 ‘언제든 떠날 알바생’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모든 게 ‘별 일’ 아니었는데 그게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는 거죠. 일종의 자기 암시 효과도 있는 것 같고.”
사실 우리 모두는 ‘정규직’이라는 탈을 쓴 임시직 아니었던가.
그러고보니 나도 꽤 이른 나이에 회사란 곳이 생각보다 ‘믿을 만한 곳이 아님’을 깨달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원증’이라는 것을 목에 걸었던 회사에서 쫓겨나듯 퇴사한 게 스물일곱살이었으니까.
매우 번듯한 회사였고, 어쩌면 누구나 가길 원하는 회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신규 사업을 시작한다는 이유로 ‘돈 안 되는’ 부서 정리를 시작했고 운이 없게도 그 부서의 막내가 나였다. 그런데 문득 생각한다. 그게 정말 ‘내가’ 운이 없어서였을까. 내가 ‘운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을까.
다행히도 이 일이 나에게는 꽤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회사에 대한 기대감이나 충성심을 갖는 대신 나에 대한 자신감을 먼저 가졌다. 그 어떤 회사도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는 언제든 떠날 준비를 했다. 그렇다고 회사 일을 허투루 한 것은 아니다. 회사 안에서 내가 맡은 일은 곧 나의 포트폴리오였다. 최선을 다했다. 평가도 좋았다.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묘하게 긍정적으로 흘렀다. 자신감의 원천이 됐고, 회사 업무나 상사 앞에서 여유가 생겼다. 나의 포트폴리오를 쌓는다는 마음으로 일하니 업무에 애정을 쏟게 됐다. 소중하고 귀한 ‘나의 일’이 됐다.
알바생의 마음이 뭐 어떠한가. 앞으로 누가 ‘직장인의 마음’을 묻거든 당당하게 말해야지.
“저는 알바생의 마음으로 회사를 다닙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