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일꾼의 말
제19의 일꾼_13년차 일꾼으로 살고 있습니다. IT분야 기자에서 IT분야 사업가로 활동 중입니다.
좌절, 슬픔, 무기력을 빼고 일꾼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할 수 없다. 가끔은 내가 좌절하기 위해서 회사를 다니나 싶을 정도로 일이 잘 안 풀릴 때가 있다. 어쩌면 멘탈이 털리는 비용이 내 월급에 포함돼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3개월간 기획했던 콘텐츠 사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경영진으로부터 쓴소리를 들었다. 사업을 하려는 정당성과 수익모델을 설득하지 못한 탓이었다. 3개월 내내 밤 새워가며 만든 사업기획안은 그 시간 이후로 폐기물 처리가 됐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이건 좌절할 일도 아니었다. 지난 번 회사에서 론칭까지 시킨 신규 사업을 내 손으로 문 닫아야 했을 땐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이런 순간을 마주칠 때마다 내가 찾는 건 열아홉 번째 일꾼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직장을 함께 다녔고, 신규 사업의 최후를 함께 맞이하기도 해서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이 있다.
이 일꾼은 IT분야에서 일 잘하는 기자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글도 되고, 사업도 잘 하는 흔치 않은 캐릭터여서 여러 회사에서 스카우트 요청을 받았다. 무엇보다 일에 거침이 없고, 자신감이 넘쳐서 어느 곳에서도 리더들의 신뢰를 얻었다. 옆에서 지켜봤을 때 그가 남달랐던 건 누가 봐도 좌절할 만한 상황에서도 주눅 드는 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조무래기 일꾼 시절, 열아홉번째 일꾼의 책상에서는 자주 큰 소리가 울려퍼졌다. 부장의 고함소리부터 선배들의 핀잔까지. 다른 일꾼들은 한 번 겪기도 힘든 일이 열아홉 번째 일꾼에게는 종합선물세트처럼 터졌다. 이 일꾼이 쓴 기사를 보고 투자한 독자가 '손해를 봤다'며 항의해오는 일도 있었고, 야심차게 기획한 회사 행사의 관중석이 텅텅 비어 경영진이 흰자위를 드러낸 일도 있었다. 한 기업의 모델을 거론했다가 일주일 동안 팬클럽으로부터 전화 공격을 받기도 했다.
행사 문제로 부장의 고함소리를 1시간 동안 온몸으로 맞은 그에게 '괜찮냐'는 말을 건넸을 때는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내가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내 일이 나는 아니잖아, 그냥 내가 해야 할 리스트일 뿐이지. 일과 나 사이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해."
'동료 좋다는 게 뭐 있겠나'하는 마음에 다가가면 위로의 손짓이 민망할 정도로 쾌활했다. 흔한 일꾼들의 반응은 아니었다. 그는 일과 자신을 떼어놓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위의 수많은 일꾼들은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문제를 겪는다. 일에서 실수를 하거나 본인이 맡은 일이 어그러졌을 때,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책한다. 스스로를 다그치거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무너진다. 이런 과정은 일꾼들이 일을 두려워하게 만들거나, 조직을 불신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혹은 일꾼 스스로도 ‘나는 일을 망치거나 못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아진다. 열아홉번째 일꾼이 달랐던 게 이거였다. 일을 그저 해야 할 목록으로 보고,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지 않았다. 열아홉째 일꾼에게 ‘일사이트’를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을 했다.
“일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 일을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처럼 여기면 안 돼. 왜 그런 관계 있잖아. 몇 년 전에 어찌어찌 알게 된 사이인데 동갑이야. 인간적으로는 엄청 친해지고 싶은데 그렇다고 반말을 하기도 애매하고, 자주 만나기는 하지만 함께 술 마시고 어깨동무하기엔 어색한. 일과 나는 딱 그런 정도의 관계가 좋은 것 같아. 일에 매몰되면 그 경계가 흐려져. 일과 나를 떼어놓고 생각해야 해. 그래야지 일을 대할 때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나 낮아지는 자존감 따위를 걱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많은 평가나 조언을 듣고 업무 능력을 높일 수 있지. 왜 업무 평가나 조언을 듣고 기분 나빠하는 일꾼들 많잖아, 이들은 일이 아니라 자기를 평가했다고 생각해서 그래.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순간, 귀에는 셔터가 내려가지.”
제19의 일꾼 말처럼 일은 내가 아니다. 그래서 일에서의 실패가 나를 말해주진 않는다. 오늘 직장에서 쓴소리를 들은 일꾼, 당신도 스스로에게 생채기 내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