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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quniill May 28. 2019

"너한테 관심 1도 없어,
그러니 네 맘대로 살아"

제13 일꾼의 말 

“사람들은 너한테 관심 1도 없어,

그러니 네 맘대로 살아” 

제13의 일꾼_매거진 에디터라는 꿈을 이룬 지 2년 만에 퇴사 후 이민해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트렌드에 발 맞춰 살아간다는 일에 강박을 갖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트렌드에 밝다거나 힙한 일꾼들이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비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트렌드를 잘 알고 힙한 장소를 많이 아는 것은 매우 강력한 무기다. 특히나 대중들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하는 직업을 가진 일꾼들에게는 더욱 더 그렇다. 그렇지만 일단 나에게 ‘트렌디한 사람’을 대하는 자세란 “그러거나 말거나, 저 사람 사는 방법이지 뭐” 정도다. 


고민해본 적이 없어서 대충 말했지만 조금 더 디테일하게 고민해보니 요즘 세상이 말하는 ‘트렌드’에 대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유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편이 조금 더 정확할 것 같다. 오히려 그것이 무엇이든 ‘나스러운 것을 가장 잘 알고, 취하는 사람’을 가장 힙하다고 여기는 편이다.  


살면서 본 가장 ‘힙한 사람’을 꼽으라면 한때 매거진 에디터였다가 지금은 다른 나라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선배 일꾼13이다. 십수년 전부터 무인양품처럼 밋밋하고 무색무취의 스타일을 고집했던 이 선배는 시인 기형도를 좋아했다. 


막 꾸미기 시작한 대학생들의 패션이라기 보다는 인생 느즈막히 도자기 빚는 일을 취미로 삼은 중년 여성의 스타일에 가까웠다. 옷 스타일 뿐만 아니라 필기도구, 읽는 책 등등이 모두 그랬다. 수강생으로 가득 찬 강의실에서 이 일꾼이 자리를 찾으라면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한결같이 고집스런 스타일이 좋았다. 


글을 잘 쓰던 선배는 문화 관련 매거진 에디터가 됐다. 그리고 2년 뒤 퇴사 소식을 접했다. 모든 걸 접고 이민을 간다고 했다. 퇴사 전 선배를 만났다. 선배 일꾼은 지쳐 있었다. 스스로 “오래 버텼다”고 했다.

 

“직업 특성상 다들 트렌드에 관심이 많았어. 어떤 브랜드가 뜨고, 어떤 마케팅이 멋있고, 어디가 핫하고. 매일이 이런 이야기의 연속이었지. 처음엔 그게 너무 즐겁더라고. 그런데 어느 날 그 브랜드 옷을 사지 않고, 핫한 장소에 가지 않는 내가 ‘어딘가 모자르고 덜 떨어진 애’가 되더라고. 옷장 앞에서 두 시간을 서 있던 날도 있었어. 억지로 핫하다는 곳은 다 찾아가봤는데 어쩜 그렇게 ‘별 거’ 없던지 그게 더 놀랍더라고. 트렌드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폭력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지.”


선배는 그래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을 더 보냈다고 했으니깐. 그러다 문득 선배가 이민을 결정한 사건이 터졌다. 


“내가 엄청난 왕발이잖아. 인터넷에서 싸구려 왕발 신발을 자주 신었지. 신발이 잘 망가졌는데 그날은 비가 와서 그랬는지 슬리퍼 밑창이 떨어진거야. 걸을 때마다 밑창이 덜렁덜렁거리니 얼마나 쪽팔리니. 그 신발을 끌고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나 퇴근할 때까지 아무도 모르더라고. 여전히 브랜드 신상품 이야기를 하던 중에도 망신창이가 된 옆자리 동료의 신발은 눈에 보이지 않았나봐.”


그때 깨달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냥 트렌드에 관심있는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던 거야. 나한테 관심은 단 하나도 없었던 거지. 내가 트렌드를 알든 모르든 그들에게 중요한 건 아니었고 그저 그냥 ‘너 이거 모르니? 난 알아’ 이 말이 하고싶었던 거지. 그러니 그냥 남 눈치보지 말고 너도 네 맘대로 살아. 사람들은 너가 무슨 옷을 입든 말든 관심 없어.”  


선배는 떠났다. 이후 소식은 카카오톡 프사로만 접한다. 프사 속 여전히 선배는 할머니 같은 옷을 좋아하고,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로 가득 찬 집에 살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인지는 모르지만 이 선배의 것이라는 작은 동그라미 사진 만으로도 느껴졌다. 어쩌면 선배 스타일에 맞춰 직접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무인양품에서 가방을 하나 샀다. 마침 노트북을 넣을 가방이 필요했는데 KIDS 코너에 가니 딱 적당한 게 있었다. 어린이들이 학원에 다닐 때 드는 용도라고 설명을 해줬다. 가격은 3만원. 똑딱이 하나로 가방을 여닫을 수 있어 아주 쓸모있어 보였다.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엄마가 사온 꽤나 비싸고 좋은 가방이 집에 있었지만 무겁고 불편한 가죽 가방보다는 어린이 학원 가방이 내 어깨에 찰떡처럼 맞았다. 물건을 마구 넣기도 좋고 노트북을 생각없이 툭 집어넣기 좋다. 누군가 정해놓은 '사회적 기준'에 맞지는 않더라도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살 때마다 생각한다. 유독 이 나라의 조직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고, 그러니 너는 네 맘대로 살라고 했던 선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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