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에게
하이쿠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 롤랑 바르트(프랑스 평론가) -
벼룩 네게도 역시 밤은 길겠지. 밤은 분명 외로울 거야
(蚤どもが、さぞ夜永だろ、淋しかろ)
- 고바야시 잇사 -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古池や、蛙飛びこむ、水の音)
- 마쓰오 바쇼 -
하이쿠는 5・7・5 17음으로 이루어진 일본 고유의 단시를 이야기합니다.
우선 들어가기 앞서 우리나라 시를 하나 읽고 들어가겠습니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 땅에도
오히려 꽃은 발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때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바다 복판 용솟음 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 이육사, 꽃 -
극한 상황에서도 피어나는 꽃처럼 일제강점기라는 현실의 극한 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해당 시는 하이쿠와 달리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극한의 현실, 미래에 대한 기대 등)
그에 반해 앞선 하이쿠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벼룩, 밤, 개구리, 연못만 생각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하이쿠는 독자가 글을 보며 어떤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들을 모두 배제시키고 현재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사물과 시간 등을 배경으로 만든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롤랑 바르트는 ‘하이쿠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 것이죠. 무언가 의미를 내포했다면 저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달랐을테니까요.
그리고, 하이쿠의 매력은 바로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면 그게 문학이야?!”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 수 있으니 또 다른 하이쿠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길가에 핀 무궁화는 말에게 뜯어먹히고
(道のべの、木槿は馬に、くはれけり)
- 마쓰오 바쇼 -
이 시를 보면 또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잘난 체하면 큰 코 다친다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하이쿠의 독자적인 매력은 사라지게 됩니다.
어떤 의미들을 내재하고 있다면 하이쿠도 그저 속담과 일반 시들과 다를 게 없으니까요.
그러나, 바쇼의 하이쿠들을 모은 바쇼DB라는 일본 사이트에서는 '바쇼는 말의 위, 전방에는 무궁화 꽃이 피어 있다.'(芭蕉は馬の上。前方に槿の花が咲いている)라며 해당 하이쿠를 설명하고 있으며
일본 사이트인 weblio 고어사전에는 '눈 앞'(眼前), '말 위에서 읊다'(馬上吟)라는 서문이 하이쿠 원본들에 적혀있습니다.
결국, 이 시 또한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고 한 것이 아닌 그저 바쇼가 말 위에서 바라본 풍경(무궁화와 그걸 먹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적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쿠란 '한 장소에서 일어난 어느 사건을 적은 시'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하이쿠의 3요소를 알게 된다면 누구나 쉽게 하이쿠를 만들 수 있습니다.
유리창 조용히 두드리는 구름의 눈물
(瑠璃の窓、静かに叩く、雲の露)
마노
이렇게 말이죠:)
하이쿠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하이쿠를 만들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 하이쿠 설명과 분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