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쯤 나를 해방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친구의 방 안 서랍장 위에 작은 유리 케이스가 놓여져 있었고, 그 안에는 모래와 함께 밤 한 톨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다가가 보니 고슴도치 한 마리가 나를 보며 슬금슬금 피하고 있었다.
당시 고슴도치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친구의 눈을 피해 고슴도치에게 다가갔고, 손을 뻗어 고슴도치를 쓰다듬었다. 고슴도치를 쓰다듬으려면 가시가 난 방향을 따라 쓰다듬어야 했지만, 빨리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에 아무 데나 만져 그만 손을 찔리고 말았다.
이후, 고슴도치에게 찔린 상처보다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더욱 쓰라린 나이가 되었을 때 읽게 된 한 권의 철학책에 이러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추운 겨울밤 고슴도치 두 마리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다가갔다. 조금이나마 체온을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몸에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로 인해 서로는 서로를 찔렀고, 온기를 나누기보다 아파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고슴도치들은 고통에 놀라 떨어져 앉았다. 아픈 것보다 추운 것이 나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추위가 몰려왔다. 가시가 돋지 않은 머리와 배 부분으로 온기를 나누려고 하였지만, 이번에도 가시가 서로에게 상처를 냈고, 다시 이들은 떨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고슴도치들은 겨울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
독일 철학가인 쇼펜하우어의 『소품과 단편집』에 나오는 고슴도치 이야기이다.
고슴도치와 다르게 인간에게는 ‘보디 존’이라고 불리는 심리적 영역이 있다. 우리는 그 영역 내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대표적인 '보디 존'의 예시로는 고속버스 자리가 있다. 나는 항상 고속버스를 탈 때면 창가 쪽 한자리를 많이 이용한다.
그래서 창가 자리를 예매하기 위해 버스 예매 화면을 보면 창가 쪽 한자리가 먼저 매진되고, 이후 두 자리 중 한 자리씩만 예매되어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보디 존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보디 존을 침범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출·퇴근길의 지하철이 그렇다. 어쩔 수 없이 인파 속에 묻혀 타지만, 그 속에서 일종의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바로 우리의 보디 존을 침범당하였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의 말과 행동으로 보디 존을 침범당하는 경우가 많다. 조언이라는 말을 가장한 비난이 그렇고, 친하다는 이유로 나의 감정은 거들떠보지 않고 행동하는 유형이 그렇다. 때로는 상대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도 우리의 심리적 보디 존을 침범하여 불쾌감을 선사한다.
만약, 당신의 보디 존을 침범한 상대의 말과 행동을 제때 제재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계속해서 그 사람의 비난 어린 조언과 행동에 상처 입을 것이다.
고슴도치에게 입은 상처는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바르면 저절로 낫는다. 또한 함부로 만지면 상처 입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만지기에 앞서 신중해진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가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인식하더라도 제재하지 못하면 당신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연고와 밴드로는 절대 나을 수 없으며 그 상처는 계속해서 벌어져 끝내 아물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관계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다가가야 한다.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면 상처가 덧나기 전에 상대에게 나의 불쾌감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와의 사이가 어색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을 계속해서 함구하는 것보다는 상대에게 강하게 말하되 무례하지 않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집에 들어갔을 때 혹은 다음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고슴도치의 수명은 인간의 시간에 있어서 비교적 짧은 10년 정도이지만, 우리의 수명은 고슴도치의 8배 이상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아프기 위해 태어난 인간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가두어 맞지 않는 틀에 스스로를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