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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 Dec 11. 2023

흔적을 기록하는 사진 찍기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을 찍는 것보다, 풍경을 찍는 것보다

사물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사물을 바라보며 나와 같이 이 사물을 바라봤을 누군가를 떠올린다


이 병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두려워하면서도 병의 모양에 신기함을 느끼는 아이의 묘한 미소를 떠올린다


이 병을 바라보며 마치 주막에서 파는 술병 같이 생겼다며 술 한 잔 하고 싶다며 아내에게 하소연 하는 노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생애 처음 여행을 와서 바라보는 모든 사물들에 신기함을 느끼는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린다


생애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여행에서 스쳐지나가는 모든 사물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 가고 싶어하는 노인의 희미한 눈망울을 떠올린다


내가 바라보는 사물의 모습은 아주 잠깐일지 몰라도 그 사물은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물을 찍으며 누군가의 한 세월을 렌즈에 담고, 누군가의 그림움을 담고, 누군가의 추억을 담고, 나의 시선을 담는다.

이곳엔 누군가의 행복이 담겨있고

누군가는 이곳에 자신의 불행을 떨쳐내고 가기도 하며 누군가는 이곳에서 자신의 행운을 구매한다


수 없이 묶인 불행과 행운의 조각들 중 그들의 인생에 맞춰진 불행과 행운의 조각은 몇이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그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스쳐간 지난 추억과 흔적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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