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사람들에게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벤자민 버튼처럼 어릴 때 나이들어 보인 것이 아니라 취향 자체가 40~50대 수준이었다.
물론, 이러한 취향은 오직 노래에만 국한되었다. 나도 초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다방이 아니라 카페에서 음료를 마셨고, 구공탄에 라면을 끓여먹는 것이 아니라 가스레인지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초등학생 때 내가 좋아하던 가수가 세 명 있었다
(그 중 한 분만 살아계시지만...)
바로, 김광석, 김현식, 이문세이다.
어릴 때는 지금의 유튜브 뮤직, 멜론과 같은 음악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노래들을 찾았고, 불법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 (S로 시작하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에서 노래들을 다운로드 해서 매일 같이 들었다. 계속 노래를 듣다보니 노랫말에 귓가에 맴돌고 입가에서는 흥얼거렸다. 근데 가사가 정확히 떠오르지 않아서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A4 용지에 가사를 받아적었다.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노래인데 아직도 가을이 되면 그 노래가 머릿 속에서 자동재생된다.
이문세의 노래를 듣다 우연히 故김광석의 노래를 들었다.
화려한 사운드에 목소리를 묻는 것이 아닌 기타 소리에 목소리를 실어 보내면서도 울림을 주는 그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의 노래를 전부 듣기 시작했다. 노찾사에서 시작한 민중가요부터 동물원에서의 대중가요, 다시부르기에서의 리메이크 곡들까지 모든 노래를 들으며 턱을 한쪽으로 끌어당기는 그의 창법을 따라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날 우연히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열댓명 정도의 가족이 한 방에 들어갔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모두 누가 먼저 부를 것인가에 대해 눈치싸움을 하던 중 부모님이 나에게 나가서 노래를 해보라고 했다.
기타 소리가 서서히 스피커를 뚫고 나오며 주변 소음을 잠재웠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주던 때..."
7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 이후로 가족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
"안녕히 잘 가시게..."
스피커의 진동이 잠잠해지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옷 소매를 얼굴로 가져갔다.
이윽고, 목 메인 목소리로 내게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할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는 나의 취향을 나이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의 취향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라고.
아직도 나는 김광석, 김현식, 이문세를 좋아한다.
그리고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할아버지의 빛 바랜 눈물을, 이제는 볼 수 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잠시나마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