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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Sep 29. 2020

샌드위치 매니아의 슬픔




  나는 원래 햄버거 매니아였다. 내가 샌드위치 매니아가 되기로 한 이유는 햄버거보다 단가가 절반 저렴하고, 굳이 시내로 나가지 않아도 자취방 근처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류도 다양하고 맛까지 좋은 데다 왠지 햄버거보다 건강한 느낌이 드는 샌드위치는 햄버거의 더할 나위 없는 대체식품이었다. 나는 햄버거 대신 샌드위치를 사 먹는 자신의 건강함과 알뜰함에 감탄하면서 만족스럽게 샌드위치 포장지를 뜯었다.


  가격 부담이 적었으므로 4시~5시쯤이면 간식으로 늘 샌드위치를 사 먹곤 했다. 허기 이상의 공허감이 채워지는 이 시간이 나는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심리 저변에 삼각형 모양으로 뚫린 구멍이 있어서 이곳을 샌드위치를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의무감이 들기 시작한 건, 이 습관을 일주일째 유지하면서부터다. 그때쯤 샌드위치는 내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구멍에 문제가 생겼는지 샌드위치를 채워 넣고도 뭔가가 모자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틀은 그럭저럭 버텼으나 2시가 되어도 잠이 오지 않는 그날은 정말 미칠 경이었다. 뭔가를 채워 넣고 싶다는 욕구가 수면욕을 압도하고 있었다. 나는 양 세기를 포기하고 추리닝에 삼선 쓰레빠를 질질 끌며 자취방 앞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 왔다. 배가 고프면 잠이 안 오는 법이라고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정말 배가 고팠나?


  포장을 찍찍 벗기고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자 위 같은 의문과 이상한 욕망을 의식할 새도 없이 가라앉았다. 햄 감자 샌드위치의 부드러운 풍미, 마요네즈의 질감이 혀에 감겨온다. 만족스러움과 피곤함이 밀려온 나는 드디어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그날이 기점이 되지 않았을까? 하루에 한 개씩 사 먹던 샌드위치는 야식까지 포함해 두 개로 늘었고, 시험기간이 닥치면 스트레스에 3개에서 4개까지 사 먹곤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햄버거보다 저렴한 샌드위치라도 결코 무시 못할 지출이 되었다. 샌드위치를 사면 음료를 할인해주는 행사라도 할라치면 500원을 더 얹어 2500원씩(사실 편의점의 비싼 음료 값을 고려해보면 할인도 아니다.) 2~3번의 지출이 있었으므로, 집에서 보내주는 용돈 20만 원으로는 턱없이 빠듯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이트에서 담배의 기회비용이라는 게시물을 본 적 있다. 하루 담뱃값을 아껴 할 수 있는 일을 나열해 두었는데, 스크롤을 내릴수록 푼돈의 기회비용은 어마어마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그렇게 20년을 모으면 신형 중형차를 한 대 뽑는다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푼돈이 목돈을 좀먹는 것은 순식간이란 해석도 가능해진다. 내 생각이 여기까지 닿은 이유는 보름이 조금 지날 즈음 집에서 보내준 용돈을 전부 탕진했기 때문이다. 치약 살 돈이 없어서 강구한 대책이 스킨푸드로 이빨을 닦는 것이었다. 약간 비누기가 느껴지는 것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괜찮았다. 밥은 집에서 보내준 쌀과 김치로 해결했고, 친구는 원래 없었으므로.


  약 일주일을 그렇게 보낸 덕에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도달할 무렵 통장에 용돈이 들어왔다. 5만 원을 인출한 나는 곧바로 편의점에 들러 즐겨 먹던 햄 감자 샌드위치와 데리야끼 닭 가슴살 샌드위치를 구매해 게걸스럽게 처리하고, 저녁에 치킨을 시켜먹었다. 그래도 모자란 기분에 야식으로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었는데 희한한 것은 그날따라, 늘 그래 왔지만 더 심한 불면증이 찾아왔다. 웹 서핑을 가장한 도피도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한 기분이 들어서 아무 이유 없이 울었다. 샌드위치 하나로 꼭 맞던 구멍이 이제 뭘 욱여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블랙홀처럼 느껴졌다. 욕설을 주무처럼 읊으며 이 좆같은 상황을 자위하려 했지만, 시간은 이미 4시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잠든지도 모르게 잤고, 다음날 모든 수업을 재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궁상맞은 사람이 되었는지, 뭐가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앙상한 일상을 채색하기엔 정서가 너무 말라붙었다. 뇌의 보상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막대한 대가와 터무니없는 보상에 진저리가 난 나는 기분전환도 할 겸 산책을 하기로 했다. 물론 샌드위치도 챙겨간다. 이 빌어먹을 식품은 휴대성까지 좋다.


  샌드위치에 중독성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알코올도 카페인도 없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알지 못했다. 산은 아무런 답도 제시해주지 않았다. 상쾌하다거나, 진정이 된다기보다 다리만 아파져 오는 것이다. 새들조차 비웃는 듯했다.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산이 아니라 사막을 걷는 것 같은 기분에 되돌아가려는 순간, 나는 낙타가 돼 있었다. 샌드위치 두 개를 허리에 올린 쌍봉낙타. 새소리는 스산한 바람 소리가 되었다. 나무들이 사라진 길에 덤불들이 굴러다닌다. 거대한 사구가 서서히 회전하는 환영을 보았다. 작열하는 태양이 순식간에 혹을 녹여버리고 탈진한 나는 사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모래 마녀다. 마녀의 얼굴은 눈에 익었다. 단골 편의점 오후 알바를 하는 아르바이트생, 거대한 낫을 든 그녀가 그 자루로 사구를 휘젓는다. 마녀와 같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모래를 담은 단지가 끓는다. 모래에 내 욕망과 닮은 재료들이 쏟아진다. 만들어질 묘약의 이름은 무無다.


  나는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헌데 갑자기 마녀는 휘젓기를 멈추고 낫을 빼들었다. 올려본 하늘에서는 마녀의 실루엣과 미지의 키 큰 남성이 공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 남자의 실루엣이 눈에 익었으나 눈부신 햇빛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낫의 궤적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사내는 마녀와의 거리를 좁혀가더니 마녀의 얼굴에 '무언가'를 쑤셔 박아 넣었다. 마녀의 검고 긴 머리가 잠깐 뒤로 흩날렸다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휘날린다. 추락하던 마녀는 공중에서 모래가 되었다.


  다시 눈을 뜬 곳은 익숙한 장소다. 실내의 가판대와 벽에 그려진 붉은 m짜가 독특한 폰트로 찍혀있다. 원색의 자극적인 실내 디자인과 미끈미끈한 흰 벽면이 차갑게 느껴지는 곳이다. 가판대 문이 열리고 키 큰 사내가 걸어온다. 붉은 아프로 머리의 광대, 마찬가지로 희고 붉은 패턴의 멜빵바지, 루주를 과장되게 바른 그는 어떤 표정을 지어도 웃는 얼굴이다. 로날드다. 양팔에 들린 해피밀 세트가 보인다. 로날드가 빅맥을 포장지 째 집어 올리더니 놀랍게도 분노한 얼굴로 말했다.


  "햄버거를 사 먹어 병신아!"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난 곳은 내 방이었다. 입가가 둔탁한 물체에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방 한구석에 샌드위치를 넣어둔 백팩이 보인다. 잠깐 쉬었다 간다는 것이 잠이 들었었나 보다. 시간은 오후 3시 즈음이다. 등산을 가기엔 충분한 시간이지만, 그럴 마음이 싹 가셨다. 산에 가서 먹으려 했던 샌드위치를 움켜쥐고는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나는 그날 맥도널드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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