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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Sep 19. 2020

내 이름은 김맑스




  "엄마  엄마 이름은 별이에요?"

  "응 그건 너희 할아버지가 별을 좋아했기 때문이란다. 맑스야."


  살면서 이름에 딱히 불만을 품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좋아했을까? 전교생 그 누구도 'ㄺ'받침이 들어간 이름이 없었다는 점이 약간 마음에 들었다. 책에도 실내화에도 풀네임 대신 'ㄺ'라는 글자를 이니셜처럼 큼직하게 쓰고 다녔다. 친구들도 내 이름에 호감 섞인 관심을 보였다. 다만 선생님들은 내 이름을 부를 때 뭔가 미묘한 표정을 짓곤 했다.(특히 사회 선생님)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 한 아이가 '맑스 평전'이란 낡은 책을 빌려와 내 앞에 들이밀었다. 털북숭이 남자와 주둥이만 수염을 기른 남자가 나란히 찍힌 사진, 열 두 해를 살아오면서 가장 충격적인 삶의 비밀이 들추어진 순간이었다.


  "엄마 왜 내 이름은 맑스에요?"

  나는 벌게진 눈으로 따지듯 물었다.


  "그건... 아빠한테 물어보렴."


  엄마는 소파에 엎드려 배를 긁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물을 필요가 없었다. '맑스를 좋아해서'따위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이름을 바꿔주기 전까지는 어느 것 하나 입에 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밤중 몰려오는 허기는 생각보다 강렬했다.


  12시가 지난 시간, 몰래 나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카스테라다. 행복함도 잠시, 냉장고 불빛 너머로 어떤 시선이 느껴졌다. 카스테라를 입에 문채 돌아본 소파에 아빠가 엎드려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들아 투쟁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그 순간 카스테라가 기도를 틀어막았다. 그날 나는 응급실에서 깨어났고 한 달 뒤 새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후 아버지는 다시는 투쟁 어쩌고 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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