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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03. 2020

건넌방 언니




  내가 아직 어렸을 때였어. 우리 집은 가난했고 주택가에 사글세를 살았지만, 그런 걸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어렸던 거야. 나는 건넌방에 있는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기억이 가물한 언니와 놀았어


  언젠가 언니가 이상한 걸 사온 적이 있어. 불면 고무 냄새가 나는 이상한 풍선이 너무 신기해서 내가 한번 불었다가 들이마신 후에 반나절을 드러누웠어.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어. 언니는 눈이 그렁그렁해져서 나를 내려다보았지. '엄마한테 이르면 안 돼-' 무엇을? 아마도 아홉 시가 좀 넘었을 거야 나는 시간관념도 없었어 하지만, 밤에 혼자가 아니라는 게 너무 좋아서 그대로 언니를 껴안았어.  언니는 그날 건넌방에 가지 않았어.


  엄마는 아침이면 돌아왔어. 그리고 잤어.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어. 다만 아빠가 없다는 게 싫었어 '스스로 척척' '뭐든지 알아서' 유치원에 배웠어.


  언니는 모르는 게 없었지 놀아주기도 하고 숙제를 도와주기도 했어 요리도 잘했어. 언젠가 내가 '왜 난 아빠가 없어?'라고 물은 적이 있어. 언니는 내 눈을 응시하며 말했어 '내가 엄마가 없는 거랑 비슷한 이유 아닐까?'


  언니네가 이사 간 후에 텅 빈 건넌방을 기억해. 입구에 쌓여있던 초록색 소주병과 언니 흐느끼던 소리. 고함, '지 에미'를 닮았다던 언니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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