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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07. 2020

두리번 거리다


   두리번 거리며 걷는 버릇이 바보 같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난 날로부터, 길을 거닐 때 시선을 한곳에 두기로 했다.

  

  밤길을 걷다가 문득, 주시하던 건물들은 거리와 각도를 부산히 변화시키고 내가 걸음을 멈추는 순간 건물들도 따라 멈췄다. 큰 물체에 시선을 둘수록 세상은 크게 움직였고 내 의식 또한 마찬가지로 확장했다. 나는 시선을 고정한 더 큰 물체들과의 움직임을 가늠하며 걷다가 달에 시선을 고정하기로 한다.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큰 물체일 테다. 지금은 반달이다. 달은 떠있지 않았다. 밤을 틈타 지구 반 바퀴를 주파하며 가로지른다. 반으로 잘린 부분이 지구 그림자니까 비스듬히 땅을 뚫고 몇 광년의 거리를 이동하면, 태양에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들이 공전하는 크기와 속도.. 소리, 소리가 날까? 저 큰 것들이 움직이면서 낼 소리를 가늠해 보다가. 더 큰 것을 생각해 본다. 목성보다도 더 큰 행성. 이름을 알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쯤에서 생각을 접기로 하고 기숙사로 돌아간다. 바깥바람이 너무 차다. 나의 기숙사는 10여평 남짓이고. 방이 너무 좁아서, 너무 답답하고 무서워서 창문을 열고 달을 바라다본다. 


  작은 방 안에 갇혀 있다는 게 너무 답답하고 무섭다. 이 건물 안에 갇혀 있다는 게 너무 답답하고 무섭다. 이 동네 안에 갇혀 있다는 게 답답하고 무섭다. 이 지역에 갇혀 있다는 게 답답하고 무섭다. 이 나라에 갇혀 있다는 게 답답하고 무섭다. 지구 안에 갇혀 있다는 게 너무 답답하고 무섭다. 태양계 안에 갇혀 있다는 게 너무 답답하고 무섭다. 우리 은하 안에 갇혀 있다는 게 너무 답답하고 무섭다. 우주 안에 갇혀 있다는 게 너무 답답하고 무섭다. 


  잠이나 자자. 나는 역시 두리번거리면서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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