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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07. 2020

우리 집 지나쳤어



  통학버스는 답답했다. 그래도 나만큼 멀리 사는 학생은 드물어서 집에 닿을 때면 2, 3명이 남아 이어폰을 끼고 졸거나, 창문을 바라보곤 했다. 야자는 11시까지 이어졌다. 피곤에 절어 통학버스에 올라탈 때면 종종 자전거를 타고 통학했던 날들을 생각했다. 손바닥에 굳은살과 허벅지에 붙은 근육, 힘겹게 언덕을 오를 때마다 당기던 가슴 근육, 차오르던 숨은 내뱉을 때마다 유리창에 닿아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로 화하고 있었다.


  너는 내 옆자리에 앉았어. 도서관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지 '이제 자전거 안타더라?' 나는 힘들어서 그렇다고 얼버무리고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어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쯤 네가 다시 물었어. '대학은 어디 갈 거야?' 진지한 눈빛을 한 너는 불안해 보였고 입은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 나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게 내 말문을 열었어. 우리는 그날 참 많은 이야기를 했었지 버스는 아파트 단지를 4개쯤 지나 우리 집에 닿았어.


  '우리 집 지나쳤어.'


  너는 버스에서 내려 나지막이 말했어 밤은 어두웠고 시내버스는 끊긴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바래다주기로 했지 멀지 않은 곳에 네 집이 있었어. 우리는 시간을 한없이 늘려 붙잡고 있는 것만 같았어. ‘안녕’ 어색하게 손을 올려 보였어 너는 갑작스레 파고들어 내 손을 붙잡았지. 부드럽고 밀도 높은 열기가 뺨을 타고 올라왔어.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숨이 벅차올랐어.     

  네가 같은 대학을 지원했지만 떨어졌다는 이야길 들었어. 종종 버스에서 마주칠 때도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지, 대학교에 진학하고 애인이 생겼을 때도 그날 같은 밤이면 네가 떠오르곤 했어. 어쩌면 그건 우리가 느꼈던 불안감과 외로움이 만들어낸 찰나가 아니었을까? 아닐지도 모르겠어. 아, 보고 싶다. 준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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