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 등
https://youtu.be/Wph2buNBUuc <- 공연영상 유튜브 링크
언니네 이발관, 검정치마, 김사랑, 우효 김사월님과 함께 떠오르는 가수들을 나열해봤다.
언니네 이발관/검정치마는 모던락에 가깝고 김사랑님은 록에 좀더 치중된 포크를 하시는 느낌이다. 우효님이 데뷔 시기나 나잇대가 비슷하기도 하고 비슷하게 조명을 받기도 하였으나, 테디베어 라이즈 이후 발표한 음악들은 허밍어반스테레오나 시티팝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계시는 것 같다.
이번 콘서트를 다녀오면서 장르는 둘째 치고 '스토리텔링'부분에서 언니네 이발관, 특히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가 떠올랐다. 한국 50대 명반에도 올라와 있는 이 음반은 각각 들어도 좋지만, 이어서 들었을 때 만들어지는 '스토리라인'이 있다. 가사가 책처럼 엮이는 셈이다.
2020 김사월 쇼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포스팅도 별 힘을 들이지 않고 했었는데 얼추 말이 맞는 걸 보면 재료가 좋다. 그만큼 김사월님 스스로 토크나 선곡 순서에 심혈을 기울이신 듯하다.
접속
같은 곳에서 같은 속도로 심장이 뛴다면
당신의 꿈속으로 접속할 수도 있겠죠
작고 여린 당신 등에 나의 심장을 포개고
당신의 꿈속으로 신호를 맞춰 봤어요
내 못난 마음 꿈에서는 다 용서해 주세요
너와 함께라면 내 인생도 빠르게 지나갈 거야
접속하면 동명의 영화 '접속'이 떠오른다.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영화로 1997년 pc통신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때, 인터넷에서 만난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접속'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무게감이 있다. 사람은 주변에 익숙한 것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곤 한다. 아마도 이 가사에서 '접속'은 상대방의 마음과 내 마음을 잇는, 내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나'는 당신의 꿈속으로 신호를 맞춘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
사랑했던 사람에게 주는 열쇠
그건 절대 쓰지 마 생각할수록
손에는 흐르는 땀과 금속 냄새
너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느끼고 싶어
그럴 순 없지
방금 전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니
이렇게 긴 제목의 노래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영화 아마겟돈에서 지구에 접근해오는 소행성을 파괴하기 위해 소행성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서 핵폭탄을 넣어 터뜨린다. 관계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파국으로 모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중하고 내밀한 관계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를 주는 드릴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다.
소중한 관계일수록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종종 망각한다. '편하다'는 핑계로 마구 선을 넘고, 내어준 마음을 권리처럼 누리려 한다. 아마겟돈에서 소행성의 파괴는 해피엔딩이지만, 관계에서 마음의 파괴는 치명적이다. 다양한 결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노래에서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TMI로 소행성은 처음 발견한 사람이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학자가 소행성에 붙인 이름은, 자기 아내의 이름이다.
악취
baby 낡고 병든 내게 당신이 준 꿈은
부서질 것 같이 완전한 빛깔
그때 아끼는 모든 것을 깨트린 나를
왜 살려두었나요 왜 용서해줬나요
`실수는 모두 하니까` 하고요
baby 모든 것을 이해했던
그토록 따뜻했던 세상에 없던 너의 품
그런데 악취나는 손으로
더럽힌 나를 살려두었나요
왜 용서해줬나요
`언제나 네 편이라고` 하고요
그대 맘을 더럽힌 누구의 손이라도
잘라버렸으면 해요
그대 귀를 더럽힌 어떤 누구의 혀라도
뽑아버렸으면 해요
악취는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의 ost로 쓰였다. 인간수업의 주인공 오지수는 사실상 소시오패스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소시오패스가 애착을 가진 코디펜던트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다. 코디펜던트는 경계선이 없다. 내가 너이고 너가 나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무슨 짓을 하든 너그러운(그리고 위험한) 태도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착취의 대상이 되기 쉽고 기구한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다.
악취를 노래하는 '나'는 완전한 소시오패스는 아닌 것 같다. 동정심을 느끼되, 이 역시 내가 괴로워서 괴롭다기보다는 - '나는 괜찮지만, 네가 괴로워하니, 내가 괴롭다.'처럼 한 차원 더 나아간 양심적 고통을 느낀다. 상당히 양가적인 감정이다. 보통은 이 정도까지 느끼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정확히는 못한다는 표현이 좋을 것 같다.
'나'는 '당신'의 마음을 파괴한다. '당신'이 그토록 아꼈던 모든 것을 깨부수지만, 언제나처럼 나를 용서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나를 미치게 한다.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양극단을 오간다. 모순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존재양식을 가진 사람도 있다.
수잔
수잔 소녀 같은 건 소년스러운 건 어울리지 않아
그저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넌 혼자 남는걸
살아온 것도 낭비된 것도 아닌 텅 빈 삶이었지
너무 초라해 몰래 원한 너의 진심
수잔 너와 같은 건 너를 추측할 건 알려주지 않아
그저 너를 보여줄수록 진실돼 갈수록 넌 혼자 남는걸
살아온 것도 낭비된 것도 아닌 텅 빈 삶이었지
너무 초라해 몰래 원한 너의 진심
수잔 소녀 같은 건 소년스러운 건 어울리지 않아
그저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넌 혼자 남는걸
다른 김사월님의 노래는 '나'의 감정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수잔'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비슷한 노래로는 자우림 '김윤아'님의 'Girl Talk'이 있다. 다만 김윤아님의 Girl Talk이 방황하는 십 대 소녀를 독려한다면, 수잔은 아마도 이십 대 중후반쯤으로 추정한다. 수잔은 '나'일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뭔가 서글프다. '잃어간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다. 여기서 '나'는 젊음이 어울리지 않게 되더라도 그저 '너'로 살아가길 권유한다. 초라함을 느끼거나 혼자 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윤아님의 'Girl Talk'이 소녀에 대한 동정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을 중심에 두고 있다면, 김사월님의 수잔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성인으로써 담담하고 따뜻하게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감정이 덜 들어가며, 희망적인 메시지도 덜하지만 묘하게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