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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an 05. 2021

2020 김사월 쇼를 다시보며 feat. 가사해석

붉은 늑대, 죽어 + 너무 많은 연애, 일회용품, 오늘 밤

  김사월님의 2020년 5월 노들섬 라이브 영상이 드디어 유튜브에 업로드 되었다.


  한국 포크는 대학가요제 시절 이후 이렇다 할만한 사조나 계보가 없었는데, 2014년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김사월'님이 데뷔하신후(깎듯하다) 독보적인 위치에서 활발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포크계의 기린아(*슬기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 젊은이를 일컫는 말)가 아닐까 싶다.


https://youtu.be/YOnKGJ5xhzY <- 영상링크 / 들으면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최근 서점에서 '나는 말하듯 쓴다'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김사월님은 '말하듯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고, 가사 자체도 아주 훌륭하다. '붉은 늑대' - '죽어' - '너무 많은 연애' - '일회용품' - '오늘 밤'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누군가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 것만 같다. 이야기는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붉은 늑대


사냥하는 자는 숨는다

아마 표정 때문이겠지

누구나 알아채는

웃기는 붉은 늑대


  2019년 6월 발표한 '붉은 늑대'는 기존 김사월 님의 스타일에 살짝 빗겨나있는 노래다. 기타리프가 강하고, 제목과 가사도 '붉은 늑대'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가져왔다. 여기서는 '관계를 사냥하는' 붉은 늑대가 등장한다. 사냥을 위해 몸을 숨겼지만, '누구나 알아채는 웃기는 붉은 늑대'다.


  붉은 늑대는 '이유도 없고 마음도 없이' 누군가를 가지려 한다. 김사월님의 노래 가사들은 대개 복잡하고 양가적인 감정(동일한 대상에 대한 상반된 태도)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붉은 늑대는 그저 조소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듯하다. 이후에는 별 가사도 없다. 누구라도 상관없고 당신이 좋겠다는 식의 플러팅을 반복한다.



플러팅(Flirting)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또는 두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행동으로, 보통 상대방에게

성적인 또는 사회적, 낭만적 관심을 보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종합해보면 숨어있든 페르소나를 쓰든 누구나 알아챌 수 있으니 깝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지 않나 싶다.




죽어+너무 많은 연애


나는 신뢰받지 못했지

항상 나는 사랑하지 않았지 나를

지혜로운 사람은

내 곁에 머물지 않았지

내 맘 주어도

내 맘 갖고 싶진 않았지

난 죽지 못하고 왜 난 죽지 못하고

뭐가 나아지길 바라는 건지


    정신분석학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자아의 일부를 상대방에게 떼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헤어짐이나 거부는 떼어진 자아의 죽음을 말한다. 나의 일부가 죽는, 그런 경험은 유쾌하지 않다. '나'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너무 많은 연애

내가 원하는 건 사랑뿐이었는데

누군가를 목 조르게 해

너무 많은 연애

내가 원하는 건 사랑뿐이었는데

누군가를 목 조르게 해



  노래는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쓸어 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감성이 약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내가 원하는 건 사랑뿐이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연애를 했지만, 이것이 '누군가'의 목을 조른다. '나'의 목이 아닌 '누군가'의 목을 조른다는 부분에 참 마음에 든다.


  단순히 내가 괴로워서 - 내가 괴로운 것이 아닌, 나는 괜찮지만 - 누군가가 괴로워서 - 내가 괴로운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지 사랑뿐이었고 그것을 얻는 과정에서 남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물론 고의는 아니지만 '사랑'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세부사항'이 존재한다.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목을 조를 수도 있다.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 '나'는 단절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집으로 가면 너와 헤어질 테니

집에는 안 갈래

그냥 그 바다에 있을래

그냥 그 공원에 있을래




일회용품


난 내가 일회용품이면 좋겠어

넌 내가 몇 번 울 수도 없게 날 만드는 걸

굉장히 행복하거나

굉장히 슬플 것도 없는 건

죽은 거나 다름없지

기쁨이란 잠깐

기쁨이란 잠깐

기쁨이란 잠깐

나를 스쳐 가네


  이 노래를 너무 많은 연애 뒤에 붙여놨다는 점이 참 재밌었다.


  '너무 많은 연애'가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서 진자운동한다면, 이 노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느껴진다.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이 '일회용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너무 많은 연애에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두려움' '관계 지속에 대한 두려움' 노래하다 지친 나머지  '일회용품' 이것을 아예 포기하고 오직 즉각성과 자극에 매달려 '스쳐가는'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원하는  사랑뿐이었는데' '굉장히 행복하거나 굉장히 슬플 것도 없는  죽은 거나 다름없지'라는 가사로 대응된다. 이미 식어버린 관계에서 '사랑' 가사에 소환하는 것조차 낭비라고 생각했나 보다.



오늘 밤



아주 자욱한 안개보다 고독한 밤

아주 고독한 어둠보다 짙은 나

오늘 밤 너는 너의 연인 사랑에게

함께 살고 죽는 사랑을 맹세해

아주 자욱한 안개보다 고독한 밤

아주 고독한 어둠보다 짙은 나

오늘 밤 나는 좋은 칼과 총을

과거의 우리에게 겨누고 들어가

귀엽고 잔인한 사람이여

너의 차가움을 잊지 않게 해줘

너의 침대에 저주를 보내서

세상 가장 불행한 사랑을

나누게 할 거야




  나는 김사월님 특유의 양가성을 정말 사랑한다.


  헤어지면 그 사람의 좋았던 부분만 떠오른다는 말이 있다.(비록 다시 만나서 10분만 이야기해보면 왜 헤어졌는지 답이 나오게 되지만) "귀엽고 잔인한 사람이여 너의 차가움을 잊지 않게 해줘"라는 가사는 슬프다. 차갑게 헤어진 사람을 두고 '귀엽다'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상태일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재밌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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