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레 Jun 28. 2021

큐플릭스 초단편 - 해파리 모자 이야기

(옴니버스/초단편/SF)


  2300년경 가장 급속하게 번성한 생명체가 있다고 한다면 단언컨대 '해파리'다. 당신은 지구 온난화나 물고기 남획으로 인한 천적 감소 따위를 떠올리고 있겠지만 이즈음 해파리의 개체수는 어림잡아 300억 마리 이상이다! 전 세계 인구가 100억이 조금 안되니까 한 명당 해파리 3마리를 갖는 셈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해파리의 주 서식지가 바다에서 육지로, 정확히 말해 '옷장'속에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AD 2222년 석유고갈을 비롯한 많은 변화가 인류 앞에 들이닥쳤다. 석유를 대체할만한 가장 유력한 자원은 바닷 속의 망간단괴였다 때마침 일본과 통일한국을 잇는 심해철도가 완성되었고 미국과 러시아 중국 역시 심해 정거장을 비롯한 심해도시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심해'은 달탐사 시대의 '우주'가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블루오션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미항공우주국 나사는 세금낭비여론과 함께 2213년 해체되었고 대신 우주군이 창설되었다


  두 번째 큰 변화는 바이오테크놀러지의 비약적인 발전이다. 22세기말 이미 화학과 공학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해철도와 유라시아 횡단열차로 구석구석 이어진 세계는 거대한 지하철을 연상시켰다. 오사카에서 심해열차를 탄 다음 횡단열차로 환승만 하면 하루 만에 나폴리에서 피자를 먹을 수 있었다. 화학은 딱 연금술 직전까지 발전했다. 모든 것이 최소의 에너지로 최대의 효율을 보장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이 그렇든 만족할 줄 몰랐으므로 '무한동력'이 새로운 화두로 자리 잡는다. 3차오일 쇼크를 경험한 세대로서 유한 에너지에 대한 불신이 불러온 기류였다. 그리고 무한동력의 열쇠는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있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시작은 일본의 한 바이오연구센터에서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를 개발하면서부터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심해 속에서 아주 적은 유기물만을 섭취하면서도 상당한 빛을 발하는 '야광 해파리'였는데, 오랜 노력 끝에 바다에서 지상으로 그들의 서식처를 옮기는데 성공 한다. 하지만 연구진의 바람대로 해파리가 유기발광 다이오드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첫째로 광도가 약했고, 둘째로 기괴한 모양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절망했지만, 전혀 다른 방향에서 뜻밖의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2291년 밀라노 패션쇼에서 처음 등장한 해파리모자는 시대의 이상을 보여주는 듯 했다. 부드럽고 가벼우면서도 마치 실크처럼 우아한, 그리고 빛나는 촉수로 하여금 미래 지향적인 아우라를 발산했다 이후 샤넬은 새로운 토털패션의 일환으로 해파리를 시판했고 루이비통과 돌체 앤 가바나 버버리가 뒤를 이었으며 보세 시장까지 확산되면서 '해파리모자'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모든 초등학생에게 해파리 착용을 의무화 했다. 시리아와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여인들은 히잡 대신 해파리를 쓰기 시작했고 신부들은 면사포용으로 개량된 긴 촉수의 해파리를 머리에 쓰는가 하면 가톨릭 교황 성 안드레아는 전통적인 교황관 대신 2m가 넘는 대왕해파리를 쓰고 광채를 뽐내기도 했다. 쓰는 방법은 간단한데, 정수리에 무취 가공한 문어조각을 올리고 해파리를 쓰면 세 달에서 네 달 정도는 화려한 빛을 발산한다.


  심해도시가 완성되면서 유행은 더욱 번져나갔다. 심해도시는 심해철도의 허브로서 기능했다. 때문에 관광과 유흥, 상업이 발달한 곳이다. 특히 중심가에 자리한 클럽 '메갈로돈'은 독특한 심해 마케팅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 마케팅이란 다름이 아니라 1시 부터 3시 까지 불을 끄는 것 뿐 이었는데 춤추는 사람들의 해파리 모자에서 야광촉수가 미친 듯이 찰랑거리며 온갖 색을 발산했다 해파리 입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는 풍경이었다. 





https://open.kakao.com/o/s5iB5Tjd

제보/아이디어/피드백 등 환영합니다!!


큐플릭스QFLIX 기부형 자율구독료 : 신한은행 110-311-434110 허광훈





작가의 이전글 큐플릭스 초단편 - 코코에스프레소의 비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