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초단편/코미디)
백양사 아래 옹기종기 모인 식당가에서 옻닭 집을 운영하던 김춘삼 씨는 최근 고민이 생겼다. 거래하던 농장이 망하면서 염가에 공급받던 옻을 비싼 값에 사와야 했기 때문이다. 메뉴의 가격을 올리자니 손님이 떨어져 나갈까 싶어 원가를 낮출 방법을 강구하던 어느 날, 평소 즐겨 마시던 원두커피를 우리다 만화처럼 찌릿한 스파크가 김춘삼 씨의 뇌리를 스쳤다.
‘그래! 옻 대신 커피를 넣어보는 거야, 색도 비슷하고.. 씁쓸한 게 아무도 모를 것 같은데..’
김춘삼 씨는 그 길로 차를 몰아 장성 외곽의 한 커피 로스팅 공장에서 볶은 원두 10kg을 3만 2천원에 구매했다. 이런 것 몇 알 넣고 오륙천 원 씩이나 받아먹는 놈들은 타고난 사기꾼들이라고 김씨는 생각했다.
춘삼 씨의 예상대로 커피를 넣어 만든 옻닭과 순수 옻으로만 만든 옻닭은 맛이든 모양이든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커피닭 쪽이 약간 더 쓴맛이 났지만, 옻도 많이 넣으면 그런 맛이 났으므로 손님들은 오히려 ‘옻이 많이 들어갔나 보네 허허허’하고 좋아할 터였다. 그리고 김씨가 전혀 예상치 못한 어떤 ‘효과’가 손님들을 끌어들였다.
김씨는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자 대담하게도 원두의 양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옻닭은 국물이 진짜배기라며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몽땅 들이킨 손님들의 몸속에는 에스프레소 3~4잔 분량의 카페인이 그대로 농축되었고 당연하게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먹은 옻닭이 사실 커피닭 이었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 한 채 ‘아 오래간만에 보양식을 먹었더니 힘이 뻗쳐서 잠이 안 오는 구나!’ 생각했고 엉뚱한데 힘을 쏟아내고서야 잠이 들었다.
김춘삼 씨의 옻닭 집은 입소문을 타 날로 번창했고 VJ 특공대니 생생 정보통이나 하는 온갖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이거.. 남자한테 진짜 좋은데.. 뭐라 설명을 못 하겠네’ 말하곤 능글맞게 웃는 춘삼 씨의 얼굴이 전파를 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리 제임스 마칸달씨는 한인교포 4세다. 그는 문화적으로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윗대에는 한인을 비롯해 중국인도 있었고 흑인 할머니와 백인 어머니 그리고 유대계 혼혈 할아버지 등등 글로벌한 족보를 가졌으므로 스타벅스 프랑스지부 이사가 된 지금에도 ‘문화 정체성’에 대한 콤플렉스는 여전했다. 그는 고민 끝에 연가를 내어 한국을 방문했다.
관광 3일째 백양사에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에 안내서에 맛집으로 추천된 ‘춘삼 옻닭’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음식이 나왔고 국물이 일품이라는 설명에 따라 국물을 덜어내 맛을 본 마칸달씨는 적잖은 문화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춘삼 씨라도 프랑스지부 스타벅스 이사의 혀까지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마일드 블랜드.. 아라비카 커피빈이라.. 육수에 우러나 진하고.. 독특한 허브향이 나는군.. 커피를 이렇게 우리다니 믿을 수 없어’
이틀 후 프랑스로 돌아온 마칸달씨는 스타벅스 이사직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설립한다. ‘코코 에스프레소’라는 이름의 커피숍은 ‘춘삼 옻닭’의 메뉴를 벤치마킹하여 허브와 커피빈 그리고 닭으로 우려낸 커피를 주력상품으로 내세웠고 마카롱이나 허니브레드 같은 흔해빠진 디저트 대신 닭 다리나 닭 가슴살, 공기밥 같은 메뉴를 선보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특히 주메뉴인 코코에스프레소와 닭고기는 브런치로 인기가 좋았다. 바쁜 현대인들은 적당한 가격에 식사와 커피를 카페에서 한 번에 해결하는 걸 선호했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휴대폰에서 버튼을 제거한 것처럼, 마칸달씨의 새로운 영업 전략을 일종의 혁신으로 받아들였다. 마칸달씨는 자신에게 한민족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코코에스프레소는 1년 만에 세계 5대 도시에 지점을 세우면서 날로 번창했고 같은 해 김춘삼 씨의 ‘춘삼 옻닭’은 식품의학안정청의 단속에 덜미를 잡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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