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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l 07. 2021

큐플릭스 초단편 - 상담가와 방

(옴니버스/초단편/미스테리)



  내 직업은 상담가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던 것이 맞물려 어렵사리 잡은 직장이다. 담당은 가정이나 학교와 연계된 곳이며 10대들이 주요 고객층인데, 이들은 멜로디 인형처럼 항상 같은 말을 되풀이 해 댔다. 가정불화로 인한 방황이라던가 왕따 문제, 진로 및 성적문제, 이성 문제 등등을 수도 없이 상담했다. 심지어 ‘패턴 별로 답변을 제시한 테이프를 만들어 틀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가장 큰 문제는 이 일이 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의욕이 없지는 않았다. 내게 상담 받은 학생들과 사적인 연락을 취하기도 하고. 여차하면 금전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집에 가기 싫다는 학생과 내 집에서 함께 살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은 이 일이라는 게 사람을 A, B, C, D, 같은 유형으로 분류해서 '넌 이거니까 이렇게 해야 해. 넌 저거니까 저렇게 해야지.' 하는 정도의 선에서 완벽하게 수행되었으니, 그 이상의 감정을 담는다거나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볼 때 공허한 에너지의 낭비였다. 나는 곧 사람을 사람 자체로 보기보다도 A 유형의 사람, B 유형의 사람과 같은 분류 대상, 간단히 말해 일거리로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직업의식이 없다고 꼬집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서도, 대부분이 그랬다. 청년 취업난이다 경기침체 다 하는 판에 ‘꿈’이니 ‘적성’이니 하는 것은 사실상 사치였고 ‘스펙’만이 거의 유일한 경쟁력인데, 조금이라도 괜찮은 직장이라 하면 닥치는 대로 원서를 내놓고 볼 일이어서, 막상 직장을 얻기라도 하면 대다수가 프로의식이나 열정과는 멀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학생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성적 내기에만 열을 올리는 B급 선생이나, 회사의 기술과 관련한 기밀을 중국에 팔아넘기는 B급 회사원, 권력이나 탐닉하고 부정부패나 저지를 줄 아는 B급 정치가 등등 널린 것이 B급 인간들 이었으니 B급 상담가 한 명쯤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소에 예정에 없던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기관이나 학교에 의해 인계되어온 손님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자발적으로 누군가 찾아오는 일은 흔치 않았으므로 '어떤 고민을 가진,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그만 몸집의 여학생을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분류대상, 일감과 같은 권태 섞인 의무감만이 들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멀뚱히 서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 아이의 첫마디. 10대 특유의 어린 목소리다. 고등학교2학년 이라는 아이는 하얀 얼굴에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들어왔다. 평범한 교복차림이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학생 같지는 않았다.


  나는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인사를 건네고, 차를 권하고, 긴장을 풀기 위한 가벼운 잡담 등등을 진찰접수처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했다.


  방어적인 태도의 아이는 고민의 핵심과 구체적인 상황, 직접적인 표현을 회피한 채 빙글빙글 맴돌았다. 짜증이 꾸역꾸역 솟아올랐다. 아무래도 고민의 방점은 짝사랑, 연애문제에 찍혀 있는 것 같았다. 그 애의 말들은 방점으로부터 받침 각이 서서히 늘어나는 컴퍼스를 연상시켰다. ‘그 애를 보면 내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부터 시작해서 아무런 부연 없이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만을 쏟아냈으므로 들으면 들을수록 회오리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용기를 내고 싶은데 두렵다.' '그 애와는 눈을 똑바로 마주칠 수가 없다.'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야할지 모르겠다.' 그 애의 말이다.


  내 질문은 곧잘 무시하고 제 말만 하는 녀석에게 ‘그래 네 맘대로 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아무런 연결고리도, 상담을 위한 충분한 여지도 주지 않으면서 쉼 없이 30분을 토로하는 괴력이 그 작은 몸 어느 구석에 붙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삼십 분이 지났을 때 그 아이의 말은 ‘툭.’ 끊겼다. 아무리 질풍노도의 아이라지만 정말로 폭풍 후에 적막 같은 것이 상담실에 맴돌았다. 내가 ‘어.. 흠 그래.’하고 말을 시작하려는 순간, 아이는 싱긋 한번 웃더니 뜬금없이 ‘방이 참 좋네요.’하고 말했다. 그런 미소라니. 아니, 그나저나 정말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내가 방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은 사실이다. 내담자로 하여금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월급날마다 그림이며 인테리어 소품을 사다 놓았다. 하얗게 도색한 멋대가리 없는 책 꽂이는 윤기 흐르는 짙은 갈색 장미 목 책 꽂이 로 교체했다. 특히 나와 내담자가 마주하는 책상은 지금은 그 희귀성으로 벌목이 금지된, 그중에서도 무늬가 아름다운 상품 마호가니로 만들어졌다. 우아한 백조를 연상시키는 할로우 바디 기타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하지만 지금 그런걸 알아봐 줘 봤자 어쩌란 말인가? 이것들의 목적은 내담자의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지, 내담자의 시선을 끌어 ‘방이 참 좋네요.’ 같은 말을 듣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충 구워삶아 보내자.’라는 결론에 이른 나는 간단한 심리검사라며 테스트지를 건넨 후 막연하게 ‘결과가 어떻든 우선 용기를 내보는 게 어떻겠니? 내가 뒤에서 응원해 줄게.’ 같은 뻔하고 진심 없는 말을 반복했다.


  그것은 우울 78 짜증 74 불안 86 종합 T점수가 평균 79점으로 전국기준 0.5%에 해당하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런 아이들은 보통이라면 정서적으로 불안정 해 보이거나, 조그만 자극에도 히스테리 적으로 반응하기 마련인데 그 아이는 조금 기묘했지만 명랑했기 때문에 검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가면우울증이 아닐까에 대해 의심도 해 보았지만, 그 아이가 검사지를 대충 작성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왜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설문지 작성이 귀찮아서 마구 찍는 사람들.


  사실이라고 해도 굳이 내가 나서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했다. 혹여 일탈행동을 한다면 부모와 선생이 책임지고 선도할 일이다. 나는 상담도 다해주었고, 고민이 해결되지 않았다면 그 애가 다시 찾아올 일이다. 이런 일로 그 아이를 다시 부르는 건 역시 공허한 에너지 낭비라는 판단이 들었다.


  다음날 오후 5시 즈음이었다. 서류를 챙기며 퇴근준비를 하던 중에 뜬금없이 방문이 열리더니 중년의 건장한 사내 두 명이 구둣발로 들어와서는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고 동행을 요구했다.


  식은땀과 진땀에 셔츠가 기분 나쁘게 들러붙었다. 머릿속이 꽉 차도록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어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어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어.'하고 되뇌어도 바짝 긴장한 신경은 심박 수와 호흡을 비롯한 신진대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형광등이 켜져 있었는데도 어둡고, 공허하고, 두려운 공기가 주변으로부터 


  잠시 후 사십 대로 보이는 경찰청 취조관이 싸구려 데스크의 맞은편에 앉더니 '우선 긴장을 푸시고요.' 하면서 미소 비슷한걸 지어 보였으나 오히려 두려움을 배가시켰다. 그의 얼굴에 그림자 깊다. 경찰은 오늘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살인사건은 같은 반 동급생을 살해하고 가해자인 여학생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것으로 꽤 큰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tv도 신문도 모두 그 사건을 보도했지만 늘 그렇듯 왕따,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숙고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시간이 지나자 다 함께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사건의 가해자는 나를 포함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경찰관은 내게 아이의 유서를 건넸다. 백지에 크고 또박또박한 글씨로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고 쓰여 있었다. 취조관의 말에 따르면 아이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고 했다. 평범한 수준의 왕따가 아니었다 최근에는 살해당한 남학생으로부터 몹쓸 짓을 당했다는 소문이 퍼져 악의적인 너무나 악의적인 괴롭힘이 집요하게 일어났다고 했다. 그 아이의 고민은 짝사랑이 아닌, 강렬한 증오였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상담을 했기에 아이가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인지를 추궁하자 패닉이 된 나는 '모르겠다.'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날의 모든 기억이다.


  그날의 트라우마로 이전처럼 상담일 할 수 없었다. 내가 취조관인지 상담가인지 이곳은 취조실인지 상담실인지, 아무리 쉬운 상담을 해도 뭐가 뭔지 알 수 없게끔 흐트러져버렸다. 지금은 아주 긴 휴가를 받고 대학 때 읽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다시 공부하면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B급 상담가는 되지 않을 것 이라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가짜로 살지 않겠다고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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