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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l 08. 2021

큐플릭스 초단편 - 시계인간

(옴니버스/초단편/미스테리)


  시계태엽을 감고 달력에 글자를 새겼다. 초침과 펜촉으로부터, 숫자와 글자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일상이 나에게는 '중요한'것이었다. 10계단 점 좌표처럼 찍힌 일상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이며 시간은, 발명되었다. 그 어떤 동물이 그러한 분절과 변화를 눈치챌 수 있을까? 노인도 아이도, 죽음조차 도 사진기와 시계, 달력 없이는 눈치챌 수 없었던 것. 묘비명과 가족사진, 그리고 이름까지 처음부터 없었던 것들. 이집트 문명부터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랑스의 미셸 푸코, 독일의 비트겐슈타인 혹은 뉴턴과 라이프니츠 온갖 대단한 사람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었으니까. 당연하다고 믿고 무지성으로 살아갈 뿐이다. 질서 정연한 도시에서 나는 인간 이성의 위대함과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을 번갈아 떠올렸다. 짐노페디를 작곡한 에릭 사티는 알코올 중독자였다는데, 그는 어떤 종류의 인간일까? 생각한다. 기계적 운동만으로 작동한다는 오토매틱 시계 처럼, 정합적인 세계에서 a에서 b까지 정확한 시간에 도달하는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파란 불이 켜지고 정연하게 서있어야 할 승용차 한 대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내가 다시 파란불을 보았을 때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는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어째서 도로에 누워있나? 조금 전까지 세계를 구성하던 질서는 모두 어디로 증발했을까? 몸 밖의 나는 시계가 없었으므로 한없이 그곳에 머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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