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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an 11. 2022

1년 전 책 쓰기 워크샵 후기

  2018년 8월, 여름이었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9월쯤 직업상담사로 취업 후 3년째, 번아웃이 왔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번아웃이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고통까지 쾌락으로 전환된다고 들었다.(이렇게 쓰니까 좀 변태 같다.) 나는 그게 일종의 러너스 하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워라밸을 찾곤 하지만, 그건 남의 일을 하기 때문이며-남의 일을 쉬지 않고 하면 사람은 진짜 과로사로 죽는다.-흔히 덕업 일치라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생산성과 합치되면 그것이 존재양식으로 굳어서 살아가게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예를 들면 밀랍으로 벌집의 완벽한 육각형을 만드는 일벌이나, 거미줄을 만드는 거미, 솔잎을 먹는 송충이(이건 좀 다른가)처럼, 나를 더 살게 하는 것이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지만 책을 써낸다거나, 출판을 하는 것에는 지독하게 무지했다. 내가 ‘책을 낸다’는 건 매년 1회 실시하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어(조중동 메인지면 더 좋다) 소설가로 인정을 받아 문예지든 어디든 작품을 좀 더 싣고 엮어 출판사를 통해 출간을 하는, 그 정도 수준이었다. 일종의 데뷔 시스템인데, 그런 식의 데뷔만을 기다리다 간 여든이 넘도록 변변한 책 한 권 건지지 못하겠다는 위기감이 컸다.(나는 문예창작과 커리큘럼에 반드시 출판, 출판 디자인, 자비출판 등 다양한 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코시국에 자택근무도 하겠다 책 쓰기 워크샵을 신청했다. 다행히 훌륭하신 멘토 분을 만나서 짧은 기간 동안 책쓰기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도움을 받아 출판을 진행했다.


  세상이 변했다. 문학뿐 아니라 모든 매체가 다양한 경로로 링 위에 올라오고 있다. 예컨대 빌리 아일리쉬는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음악 공유 플랫폼을 통해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업로드하여 성공했다. 레이블의 선택을 통해 키워진 케이스가 아니다. 원더걸스는 2000년대 미국 진출에 실패했지만, 2010년대 방탄소년단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영향력을 뻗친다. 원걸이 미국 방송을 타려면 미국 방송사의 선택이 있어야 하지만, 방탄이 주로 활동했던 SNS나 유튜브는 소비자의 직접적인 선택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작가는 작가의 “포지셔닝”을 강조한다. 소설가가 마케팅 용어를 쓴다. 위계가 사라지자 지점이 생긴다. ‘예의 없는 새끼들 때문에 열받아서 쓴 생활예절’ ‘달러구트 꿈의 백화점’은 온라인상의 인기를 배경으로 성공적으로 출간을 진행했다. 좀 더 유식한 표현으로 수직적 구조를 지나 리좀적인 구조에 돌입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마도 내 남은 60년, 또는 70년을 계속해서 쓸 것이고 어떻게든 책으로 엮어낼 것이다. 이것이 경제적인 자유를 가져다줄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내 태생이다. 개나 소나 책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개나 소나 쓰는 책을 왜 나는 못쓰냐고 반문하고 싶고, 사실 그런 이야기는 고대에도 있었다. 고대 도시 문명 안에서 하이랭커들이나 다루던 문자, 책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서기관 같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주워삼긴 말이 ‘요즘은 개나소나 책을 쓴다’였다고 한다. 이집트 상형문자로 기록된 ‘요즘 젊은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와 궤를 같이하는 하나 마나 한 말이다.


  첫 책을 내고 홍보를 별로 하지 않았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뭔가 불완전하고, 한없이 아쉽고 완전하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가 하지 않은 일에도 자부심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 살짝 경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매달 꽂히는 인세를 보고, 그렇게 얻은 노하우로 두 번째 책을 탈고했을 때 생각이 바뀌었다. 아마도 다음 책은 더 좋을 것이고, 다다음 책은 더 좋을 것이다. 처음이 없으면 다음도 없다. 니체가 서른 즈음 낸 첫 번째 책은 당시 유행했던 철학들을 여기저기 기워온 것이고, 거장 박찬욱 감독도 데뷔작은 그럭저럭 평작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 


  어떤 위치에 있건, 무엇을 공부했건(혹은 공부를 아예 안 했건), 책을 쓰고자 한다면 쓰시라 말하고 싶다. 스스로 자격의 의문을 품거나,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거미도 거미줄을 만들 때 쉽지 않을 것이고 벌도 벌집을 만들 때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과로사가 아닌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고양감으로, 러너스 하이로 이끌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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