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레 Feb 08. 2022

소 뒷걸음질과 측면 돌파


 정면 돌파가 아닌 옆면 돌파를 모토로 삼고 살다 보니 사는 것도 좀 특이하고 생각하는 것도 좀 이상해(?)졌다.


  친구한테 내 인생은 너무 평범한 것 같다고, 사회에서 먹고 살 자신이 없어서 군 생활도 직업으로 5년(오지게 안 맞았다.)밖에 안 하고, 대학, 사이버대, 학은제 해서 10년 공부밖에 안 하고, 직장 근속하면서 조촐하게 책만 두 권을 냈으니 너무 스테레오 타입으로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토로했다가 쌉소리 하지 말라는 피드백을 받았다.(사람들은 나의 화려한 생활과 겉모습만 보겠지만 속으로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더했다가 절교를 당할뻔했다.)


소 뒷걸음질하다 쥐잡는다는 말은 바라지 않았던 요행으로 무언가를 성취할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소 뒷걸음질로 쥐를 잡으려면 우선 그만한 체급이 되어야 한다는 것부터 결코 '요행'이 아니지 않을까?(이런 비약을 좋아한다.)


  20대에 해야 할 10가지, 30대에 하지 않으면 후회하는 30가지와 같은 키워드를 훑어보면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군더더기 없는, 지극히 정면돌파적이고 생산적인 것들이지만 내 삶은 그렇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퇴근하고 2~3시간 정도를 그냥 유튜브나 보면서 날린다. 심지어 폼팩터만 다른 같은 내용을!


  그래서 '내가 너무 늦었나, 내가 뒤처졌나'하는 조바심이 뭔가를 좀 해보려다 정면충돌로 이어진 경우가 있었다. 연애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고 무리해서 연애를 해보려다가 추한 모습만 보이고 깨져버린 경우라던가(물론 측면 돌파는 모든 실패를 실패로 보지 않아야 가능하다.) '외국어 하나를 배워보자!'라는 키워드에 꽂혀 괜히 독일어를 파다가 진짜 독일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바보 같은 글을 쓰고 있다. 힘들게 회사 다녀와서 쓰나 마나한 글을 왜 쓰지 싶지만, 어쩌면 이런 비생산성이 측면 돌파의 동력 같기도 하다. 이사한다면서 손 없는 날을 찾아본다거나, 음운의 조합일 뿐인 이름을 구태여 돈 주고 작명소에 가서 짓는 것, 기타 여하 등등 한심한 행동들이 측면 돌파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핵심과 정면에서 벗어나 보이지만, 나름의 방향과 의지가 있다.


  적어도 작명소에서 아이의 이름을 짓는 사람은 아이를 사랑할 것이다.(아이를 사랑하기는 커녕 무책임하게 모르쇠하는 부모는 무엇이든 물어보살만 봐도 한트럭이다.) 작명소에서 이름을 짓는 사람이 아이가 아플 때 소아과를 안 가지는 않을 테니까, 여섯 달을 기다려 오은영 선생님에게 아이 상담을 맡겨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하는 부모님이라면, 그 아이는 오은영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한 비용과 웨이팅을 인내할 수 있는 부모님이라면 그전까지 다른 측면 돌파도 무수히 시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심함은 시행착오이고, 실패한 데이터가 많은 사람은 측면 돌파를 통한 '소 뒷걸음질로 쥐잡기'에 다다를 확률이 높다고 본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성공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한심한 글이나마 이 시간이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은 나는 최소한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무수한 측면 돌파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에, 글로 소 뒷걸음질로 쥐잡듯이, 이루어내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21년과 22년은 이미 무언가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한심함까지 긍정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적성과 재능에 대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