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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Nov 06. 2022

날개 달린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


  진화의 방향에는 여러 봉우리가 있다고 한다. 새는 팔을 날개로 만들었고, 사람은 팔에 손을 달았다. 각각 나는 게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물건을 집는 게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 경향성은 한번 정해진 방향에서 거스르는 일이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이 다시 팔을 날개로 만들거나, 새가 다시 날개를 팔로 만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변화를 거치기 위해서는 나에게 불리해지는 시기, 애매한 기능을 하는 팔이나, 날 수 없는 날개 등을 거친 다음 다시 각각의 다른 기능을 하는 기관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데, 자연에서는 그런 리스크를 가진 선택은 '봉우리를 내려오는 선택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자연환경의 엄청난 변화로 선택압을 받는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각각의 봉우리에서 위로 더 올라갈 뿐 내려가지 못한다.

 

  수각류 공룡이 새로 변하는 과정에서 깃털은 체온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다가, 구애를 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수 있고, 그다음으로 활강, 그다음으로 비행이라는 생존에 이점을 주었다. 팔도 무언가를 쥐게 하였고, 무언가를 던지게 하였으며,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나아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기능한다면, 지속 가능하다면 은행나무나 바퀴벌레처럼 수십만 년을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는 생물도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모든 동물은 진화하면 인간처럼 될 것이라는, 인간의 지능과 생존 방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관점은 인간의 관점에서 생물의 다양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오만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중에 두 분은 대기업 출신이다. 그분들을 그동안 자신을 몰아붙여 어느 수준 이상의 봉우리까지 자신을 올려놓은 다음, '이게 아니라는 판단'을 거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 모두 콘텐츠 창작에 진심이다. 자연에 비유하자면 사람이 날개를 달고자 팔의 이점을 포기한 셈이다. 그런 분들에게 '대기업에 다시 가셔야죠?'같은 말은 지극히 무례한, 맥락을 상실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꼭대기라고 생각하는 영역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한다'라거나,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라는 말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젊을 때 고생을 해야 한다'라거나, '좋아하는 일을 해라'라고 조언할 테지만, 이건 개개인의 상황과 능력, 선택압, 가치관을 배제한 채 본인이 올라온 하나의 봉우리에 집착한 생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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