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그중에서도 소설가는 말 그대로 작디작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나라에서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관리했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소설가가 뭐든 끝까지 알아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불독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이들은 마치 누군가 아무것도 모르길 바라는 듯이 행동한다. 그리고 모를 수 있다는 건 일종의 특권인데, 사람들 사이에도 너무 지나치게 파헤쳐 들어가 모든 걸 알아내 봐야 그저 뻔한 상처를 입은 일이 허다하다. 다 알고도 모른 척하거나, 아예 눈과 귀를 닫고 내 할 일에 몰두하는 것이 사실 건강에 좋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
대표적인 키워드로는 가난이 있다. 사회에는 가난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주로 사회가 덮어놓고 외면하고 싶은 것들, 그런 것들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보인다. 많이 경험하고 알아봤자 도움될 게 없다. 영화 기생충 그 가려진 부분을 전지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큰 작품성을 지닌다.
예술가, 소설가는 모를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다. 거기서 얻게 되는 정보는 사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어떤 것들은 차라리 미치지 않으면 다행인 것들이다.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을 통해서 나름의 세계를 전지적으로 구성해 낸다. 인간 사이의 미묘한 감정과 알력들,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촌극과 모순들
그건 불편한 일이다. 감추고 싶은 것들을 전지적으로 접근한 다음 미주알고주알 문자화/이미지화 해서 드러낸다고 생각하면 누군가는 필시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예술가의 타깃은 주로 '아무것도 모르길 바라는 듯이 행동하는'사람들에 맞추어져 있다.
가부장제를 순순히 모른척 따랐으면 하는 집단, 사람이 교반기에 끼어죽든 어쩌든 다음날 출근해 일을 하길 바라는 집단, 사회 안의 편만한 고통을 정당화하고 모른척 하길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설가는 주로 침묵하고 있지만 외면하지 않는다. '82년생 김지영'이 작품성은 차치하고 큰 방향을 일으켰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고 본다.
소설가는 순진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