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레 Dec 12. 2022

영화 아멜리에와 타존감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산다” - 장 폴 사르트르 


영화 ‘아멜리에’ 스틸컷 (출처: 씨네21)


  줄거리


 어릴 적 엄마와의 이별 후 외롭게 자란 아멜리에는 몽마르트르 언덕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행복을 알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는데...



인간은 모두 저마다의 결핍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는 이것을 감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고 때로는 이러한 모습을 부정하기도 한다. 


보통 이런 문장 뒤에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살아가는 삶이 아닌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로움이고 나다운 삶일 것이다'라는 결론이 붙곤 하지만,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온전히 타인을 배제하고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오늘 회사에서 신작가님과 '타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인을 존중하는 감정을 줄인 말이다. 자존감의 말로가 나만 잘살면 되는 것이고, 타인은 어쩌든 말든 다 끊어내라는 것으로 귀결된다면 반대로 타존감을 추구해야 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사회라면 자존감이 오를 수밖에 없겠다고 말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멜리에의 주인공 '아멜리에'는 외로움을 타고난 사람이지만, 타존감을 통해 자존감을 이끌어내는 것 같다. 그녀는 외로운 커플 맺어주기, 추억의 보물상자 찾아주기 등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작은 일들을 행하고 그만큼 본인도 사랑받는 존재로 등장한다.




타인은 지옥이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산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절교 일등 같은 말들에 염인주의자가 되기 보다는 친구든 연인이든 그냥저냥 아는 사람이든 대체로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좆됐다. I'm pretty much fucke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