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이직 1년 차를 맞이할 것 같다. 정신없이 시간이 흐른다. 올해는 삶의 관성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는 대로 살지 않겠다. 첫 상담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너무 자주 익숙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그게 너무 싫다고 말했다.
나는 거기에 미끄럼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의식적으로 통제력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해도, 생각이나 감정이 너무 쉽게 미끄럼틀 쪽으로 다가가 가던 길을 가고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끊어내고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물론 뭐, 심각하지는 않고 유쾌한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려고 한다. 언젠가 출근길에 룸메이트 앞에서 '나는 아주 부자가 되어서 아주 먼 항구에 가고, 이름도 모르는 것을 먹고, 반짝이는 것들을 잔뜩 사고, 히데코 생각을 하지 않고(영화 아가씨 대사임)'같은 말들을 한 적이 있다.
예술활동 증명을 끝내곤 벽에 부딪힐 것 같을 땐 '예술가는 그래도 돼!'같은 말들을 하곤 한다. '예술가는 좀 가난해도 돼!' '예술가는 멍청해도 돼!' '예술가는 개지랄을 해도 괜찮아!(이건 좀 아니지만..)'같은 말들이다. 그럼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 단순히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좀 버렸고,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것으로 더 많은 사회적 자원과 연결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예술활동 증명을 끝내고 전시/공연할인, 사회보험, 무료상담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사회와 엮어내 확고한 실체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프리랜서가 될 수도 있고, 사업이 될 수도 있고, 크리에이터가 될 수도 있다.
지난주에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크리에이터로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 삼십 대에 퇴사를 하고 크리에이터, 작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모인 조직인데, 그동안 너무 각자도생 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나름의 작당을 모의하고 꽤나 수렴되는 포인트를 잡는데 까지는 이야기가 끝났다. 그렇게 내가 가진 미끄럼틀로부터 멀어지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