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국립 현대미술관 모던 데자인 : 한홍택 작가님의 발견

by 허블
산업 미술가의 탄생


IMG_3435.JPEG?type=w1

현대미술관 모던데자인 전은 해방 이후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기 이전 도안, 산업미술, 생활미술, 응용미술, 장식미술과같이 번역된 어휘가 뒤섞여 사용되었던 1950-1960년대를 환기하는 전시였습니다.


IMG_3438.JPEG?type=w1


서양에서는 '알폰스 무하'가 상업미술가로 활동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의 조상님 격이 되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한홍택' 선생님이 산업디자인 부문에서 큰 역할을 하신 것 같았어요.



SE-2f10d662-4855-4b7e-8593-d21909faa2d6.jpg?type=w1 한홍택 선생님의 동화 삽화




IMG_3451.JPEG?type=w1 눈빛이 딱 ESTJ 같으신..


한홍택 선생님은 1916년생으로 1939년 일본 도쿄도안전문학교에서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40년 데이고쿠미술학교에서 서양회화 연구과에서 수학하셨다고 합니다.


SE-257fa716-7bbc-4553-bc7f-9cc37cba1d95.jpg?type=w1


50년대 당시에는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적립되지 않아 도안가 등으로 불리며 희미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디자인이 가지는 정체성과 위상에 비하면 좋은 대우라고 할 수 없었지요.


그런 와중 한홍택 선생님은 협회를 조직하고 글을 기고하면서 '산업디자인'이라는 분야의 중요성과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IMG_3423.JPEG?type=w1
IMG_3420.JPEG?type=w1
한홍택 선생님의 광고 포스터
IMG_3445.JPEG?type=w1
IMG_3447.JPEG?type=w1
한홍택 선생님의 화구


1955년, '전문분야'로서의 상업미술을 이야기한 작가의 단단함이 인상 깊었어요. '상업'이 붙으면 덜떨어진 예술 분야라고 믿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문학 분야에서도 웹 소설은 상업적인 것으로 보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웹 소설은 이미 단행본을 시장의 규모를 아득히 뛰어넘어 존재하고 있어요. 자기가 속한 분야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감 역시 예술가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MG_3442.JPEG?type=w1
IMG_3443.JPEG?type=w1
IMG_3416.JPEG?type=w1


당시 산업미술가는 일본 유학을 통해 디자인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조선에는 고등 미술 교육기관이 설립되지 못했고, 제3국의 유학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해요. 임숙재, 이순석, 한홍택 등 일본에서 유학을 하셨던 분들이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초기 디자인 교육 제도를 도입했다고 합니다. 더불어 해방 이후에는 일제에 말살당했던 한글 사용 보급에도 열정적으로 나섰다고 해요.


IMG_3436.JPEG


"우리 생활 주변에도 일상 미술을 하는 '데자이나'가 꼭 필요하다."


지금은 마케팅을 위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아래 두 책의 표지 디자인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34431614630.20221229070948.jpg
35911960626.20221129171717.jpg
35450352619.20221227205944.jpg


제 책은 전부 제가 했었고요. 이 정도로 '데자이나'가 될 수는 없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염가에 미술/디자인 교육을 받고, 켄바 같은 간편한 도구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 태어나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힘든 시기를 거쳐온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IMG_3412.JPEG?type=w1
IMG_3413.JPEG?type=w1
IMG_3411.JPEG?type=w1
IMG_3408.JPEG?type=w1
냥팔자 상팔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백합, 이 좋은걸 이제 알았다니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