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미술가의 탄생
현대미술관 모던데자인 전은 해방 이후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기 이전 도안, 산업미술, 생활미술, 응용미술, 장식미술과같이 번역된 어휘가 뒤섞여 사용되었던 1950-1960년대를 환기하는 전시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알폰스 무하'가 상업미술가로 활동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의 조상님 격이 되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한홍택' 선생님이 산업디자인 부문에서 큰 역할을 하신 것 같았어요.
한홍택 선생님은 1916년생으로 1939년 일본 도쿄도안전문학교에서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40년 데이고쿠미술학교에서 서양회화 연구과에서 수학하셨다고 합니다.
50년대 당시에는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적립되지 않아 도안가 등으로 불리며 희미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디자인이 가지는 정체성과 위상에 비하면 좋은 대우라고 할 수 없었지요.
그런 와중 한홍택 선생님은 협회를 조직하고 글을 기고하면서 '산업디자인'이라는 분야의 중요성과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955년, '전문분야'로서의 상업미술을 이야기한 작가의 단단함이 인상 깊었어요. '상업'이 붙으면 덜떨어진 예술 분야라고 믿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문학 분야에서도 웹 소설은 상업적인 것으로 보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웹 소설은 이미 단행본을 시장의 규모를 아득히 뛰어넘어 존재하고 있어요. 자기가 속한 분야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감 역시 예술가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산업미술가는 일본 유학을 통해 디자인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조선에는 고등 미술 교육기관이 설립되지 못했고, 제3국의 유학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해요. 임숙재, 이순석, 한홍택 등 일본에서 유학을 하셨던 분들이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초기 디자인 교육 제도를 도입했다고 합니다. 더불어 해방 이후에는 일제에 말살당했던 한글 사용 보급에도 열정적으로 나섰다고 해요.
"우리 생활 주변에도 일상 미술을 하는 '데자이나'가 꼭 필요하다."
지금은 마케팅을 위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아래 두 책의 표지 디자인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제 책은 전부 제가 했었고요. 이 정도로 '데자이나'가 될 수는 없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염가에 미술/디자인 교육을 받고, 켄바 같은 간편한 도구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 태어나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힘든 시기를 거쳐온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다는 생각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