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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Mar 21. 2023

백합, 이 좋은걸 이제 알았다니 리뷰


백합은 두 여성의 사랑을 다룬 장르 분야 입니다. 저는 나름 서브컬쳐에 소양이 있고, 젠더, 다양성 쪽으로 관심이 많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묘사를 크게 하지는 않았지만, 동성애 성향을 가진 캐릭터로 소설을 써보기도 했었고, 대학에서는 젠더 관련 수업을 듣기도 했었으니까요. 저는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주로 소비했던 소설은 일본의 순수소설, 사소설이었어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서브컬쳐로서의 백합이 생각보다 더 큰 넓이와 깊이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커뮤니티 -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문화가 흥미로웠어요.


책의 1부는 백합을 엄밀하게 정의하는 데서 시작해 2부에서는 작가님이 소비한 작품 중 볼수있는 작품을 소개해주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저는 심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작품들이 가지는 정서적인 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순문학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 정서와 향유가 작품 안에서 완결되는 느낌이라면, 장르쪽에서는 그러한 정서를 2차 창작으로 발전시키거나, 게임, 커뮤등으로 향유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상당히 실존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로는 두 가지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온라인이 그저 보조적이고, 가벼운 공간이지만 백합을 비롯한 장르계 동인들은 소통의 차원에서 깊이나 결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만약 거기에 끼게 된다면 깍두기 같은 존재가 될 것 같았어요.


온라인에 뭘 그렇게 과몰입하냐고 하겠지만, 저는 그런 문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보통 현실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X축 - Y축이 있다면, Z축이 있어서 깊게 파고 들어가는 맛이 있다고 할까요? 작품을 구심점으로 이어지는 2차 창작을 비롯한 향유가, 이제는 힘을 잃은 순문학을 팠던 사람으로서 꽤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로 ‘존잘’이라 부르는 트위터의 추앙 문화가 인상 깊었어요. 장르 작품의 팬들은 생산자, 즉 작가를 추앙하지만, 주로 작가는 작가들과 엮이기 때문에, 독자는 선망하는 작가와 그 작품에 용비어천가를 쓰고 ‘존잘님’이라 찬미 함으로써 자기만족을 가져간다고 합니다.


나아가 ‘납치해 지하실에 가둔 다음 연성시키고 싶다.’ 같은 말들을 하곤 하는데, 연성은 연금술에서 금을 만드는 방법으로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차용된 용어에요. 즉, 나만의 작은 작가로 만들어 내가 원하는 작품을 알겨내겠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제가 MBTI와 관련한 포스팅을 양산하기 시작했을 때 ‘이집 캐해 잘한다’라는 칭찬(?)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캐해는 캐릭터 해석을 의미해요. 2차 창작에서 캐해가 엄청 중요하고, 그거 보려고 엄청난 신경전을 벌입니다. 백합을 비롯한 2차 창작에서 ‘커플링은 종교전쟁’이라는 말이 있다고 해요. 나의 캐릭터 해석과 창작자의 캐릭터 해석이 다를 때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부분이 참 재밌는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만큼 민감한 요소가 겹겹으로 쌓여있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름의 장르 정체성을 가지고 세계관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 추천에서 ‘제인 우드’라는 작품은 영미소설 ‘제인 에어’의 2차 장작물에 가까우며, 그 18세기 영국의 번역문체와 뛰어난 고증 등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을 받은 ‘독고솜에게 반하면’, 그리고 신체를 사이버웨어로 바꾸는 게 일반화 된 SF세계관에서의 백합 까지 흥미 당기는 작품들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SF / 백합쪽이 제가 애매하게 창작할 수 있는 중간문학으로 보였어요. SF면 사이버웨어로 몸을 교체할테니 젠더가 희미해지고, 정서는 남아있을 테니 이런 면에서 도전을 해볼만한 부분이 있어 보였습니다. 인공지능을 사랑하게 된 남자를 다룬 영화 ‘Her’이나 ai와의 사랑을 다룬 영화 엑스마키나도 생각나더군요. 앞으로 부상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더 나이가 든다면 ‘쉬벨롬 보태니컬 판타지아’라는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어요. 나이 든 남성, 아저씨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흔히 꼰대라는 멸칭으로 불리면서 가능성 없고, 권의주의적이고 감성적/감정적으로 무딘 모습을 싫어했어요.


하지만, 저도 남성으로 태어난 이상 필연적으로 나이 든 남성, 즉 아저씨가 될 수 밖에 없는데, 앞으로 그렇게 될 저를 긍정하기 위해서라도 기존과 다른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중년 남성을 인물로, 꽃과 정물, 감정을 담아 아저씨가 가지는 스테레오 타입을 깨고 한 인간으로서 미를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건 백합과 같은 선상은 아닐지라도, 장르와 젠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만 종교전쟁… 을 일으키지 않고 내적 완결성을 지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쳤어요.


모쪼로 오랜만에 흥미로운 책을 읽어 장황하나마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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